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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문상금 - 가을 어느 날의 기억 - 20060416

by 오름떠돌이 2006. 4. 16.

가을 어느 날의 기억 

문상금

▲ 삽화= 이왈종 화백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의 한 구절이다.

창밖엔 만개한 왕벚꽃이 하얗게 피어 마치 때늦은 눈송이처럼 바람에 분분히 나부낀다. 딸애들은 오늘 학교에서 장애체험을 했다고 한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걸어가는 게 제일 두려웠다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서툰  글씨로 일기를 쓰며 재잘댄다.

오랜만에 꽃눈 내리는 창가에 앉아 성서 한 구절을 암송하며 여러 해 전 가을 우연한 기회에 들렸던 ‘살레시오의 집’을 떠올린다.


그것은 친구 로사가 간호사의 일에서 틈틈이 짬을 내어 ‘살레시오의 집’에 있는 소외당한 사람들을 찾아 고통을 함께 하는 봉사활동과 경험담을 들려주며 나를 데리고 그 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출타중이어서 뵙지 못한 우총평씨를 그 분의 생활수기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를 손에 받아들고 읽고 나서 나는 더욱 가까이 ‘우총평’이라는 한 인간과 만나게 된 것이다.


혈액순환부전증으로 일곱 번의 대수술 끝에 잘라낸 두 다리, 거리를 헤매며 노숙을 해야 했던 극한의 고통, 주위의 냉대에 꺼질 것만 같은 영혼의 심지를 신앙에 송두리째 맡겨야 했던 일과 이 물질만능이 넘쳐나는 시대에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서울 둔촌동에서 강원도 원주의 배론과 이 곳 제주도에서 그리고 김포에서 휠체어에 몸을 싣고 두 바퀴를 돌리며 종횡무진 온 몸을 불태웠던 이야기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 육신의 사치와 이기심은 흔적 없이 무너지고 한 인간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나눔 앞에 아주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살아왔음이 몹시 부끄러웠다.

그 때는 아주 무르익은 가을이었다.

현무암 담벼락 아래로 탐스런 감귤들이 탱글탱글 영글어가는, 제주도 남원읍 위미리 동쪽 끝(현재는 반듯한 장소로 옮겼다), 작은 계곡을 돌아 바닷가로 휘어지면 듬성듬성 잣밤나무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동네인데, 양철 대문에 ‘살레시오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여 있었다.

그 곳은 바로 우총평씨가 세 번째로 마련한 여자들만의 조그마한 보금자리였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엔 고요와 평화가 맴돌고 있었다.

마침 우총평씨는 안 계셨다. 김포에 있는 ‘프란치스코의 집(네 번째로 마련한 남자들의 집)에 다니러 가고 없었다.


말기의 위암환자 한 분은 며칠 전에 세상을 뜨셨고 이 풍족한 사회에서 소외된 할머니들과 여자 정박아 그리고 자원봉사자 두 분이 함께 생활하고 계셨다. 이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들은 모두 가슴에 커다란 노란색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혹여 밖에 나가 길을 잃게 되면 집을 찾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낯선 방문객이 왔는데도 사람을 반가워하는 모습이 여간 천진스럽지가 않았다. 나의 손과 팔을 만지며 쉴 새 없이 말을 건네 왔고 준비해간 사탕을 주니,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열 한 살인 상희는 정신박약아인데 그 모습 그 행동이 마치 서너 살 같았다.

서툰 말씨로 “언니 ... 언니”하고 부르며 색칠한 여러 개의 그림공책을 꺼내놓고 자랑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림이야기가 신기한지 여간 조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빨갛고 파란 색깔의 이야기 속에서 상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신델렐라가 되고 백설공주가 되고 요술 할머니가 되어 빗자루를 타고 하늘 위를 날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무엇이 저 천진난만한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을까.

잠들기 직전 쉴 새 없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우리 애들을 보며 이제는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진 상희의 얼굴이 자꾸 겹쳐지곤 한다.


앞마당 작은 평상엔 폐식용유로 만든 검정 비누가 가을볕에 잘 마르고 있었다.

노란 국화꽃이 피어있는 담장 너머 바람이 넘나들면 줄에 널린 빨래가  출렁이며 너울댔다. 너무나 아득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당하며 살고 있는 이곳의 사람들이 왜 이리 따뜻하고 정겨울까.

한 사람의 뜻과 소망과 사랑이 주는 그 힘이 무엇이며 결과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느끼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잣밤나무 숲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멀리서 저녁 미사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황혼 무렵, 로사와 나는 이들과 헤어졌다.

“안녕”하며 그 서툴고 울음 섞인 말투로 손을 흔들던 상희의 모습이 흥건히 눈물 배인 내 얼굴에 겹쳐져 덕지덕지 얼룩이 지고 있었다. 벌써 오래 전 하늘빛이 유달리 붉던 어느 가을날의 기억이다.


“로사야, 봄빛이 화창해지거든 상희의 예쁜 그림 이야기를 들러주러 가자구나!”



 2006년 04월 16일     서귀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