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미학
문상금 서귀포남제주신문
▲ 그림= 이왈종 화백
멀쩡한 날씨에 부산스레 불어대는 바람처럼 분주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쉴 새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 싶으면 이튿날 어김없이 생겨나는 먹을 일, 돌아볼 일, 각종 행사에다 밀린 원고까지 쓰다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어버리곤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며칠 전, 바람 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에 딸애들이 다니는 학교 앞에서 노란색 깃발을 들고 교통정리를 했다.
그 날은 애들의 현장학습도 있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김밥을 쌌고 교통정리가 끝나면 일터로 곧장 날아가야 할 판이라 마음이 한없이 다급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궂은 날씨 덕분에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신호등의 초록 불, 빨간 불을 쳐다보며 그리고 휙 휙 질주하는 차량들, 앞으로 달리고 또 달리는 그것들의 속도감을 바라보며 순간 아찔해졌다.
아, 너무 달리며 살아왔구나. 더 빨리 빨리 앞만 보며 살아 왔구나. 살아있다는 실감도 제대로 못하며, 결국은 헛살았구나! 아득해지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같은 반 엄마 하나가 길 건너 김밥 집으로 쏙 들어갔다 웬 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어색하게 웃는 것이었다. 바빠서 애들 도시락을 못 쌌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김밥 싸면 좋기는 하지만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마주보며 웃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괜히 석연치 않았다.
이해하기로 했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학교 앞에서 김밥을 사서 애한테 건네는 엄마 마음이 오죽할까 싶었다.
횡단보도를 거꾸로 건너오는 여학생이 있어서 ‘왜 학교 안 가니?’하고 물어보니 또 김밥 집에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도시락을 사서 가방에 챙겨 넣고 등교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참 대견스럽다 느끼면서도 그 집 사정이 궁금도 하고 또 측은하기도 하였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오늘 아침같이 일이 겹치는 날은 나도 도시락을 주문하고 싶었다.
그러면 시간도 여유롭고 재료준비에 드는 돈도 훨씬 절약되는 것이었다.
단지 엄마의 정성이 안 들어간 도시락이라는 것 때문에 마음에 걸려 바쁘면 바쁜 대로 준비하는 것일 뿐이다.
또“엄마가 만드신 것은 모두 맛있어”하는 딸애들의 아부도 무언의 압력이 되어 한 몫을 하는 것이다.
게오르규의 소설 ‘25시’가 떠오른다. 여기서 말하는 25시는 인간성 부재의 상황과 폐허, 절망의 시간을 의미하고 있다.
이 극한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인간성의 회복이 있을 뿐이다.
즉 24시(인간성 상실)는 이미 지났는데, 새로운 날(인간성 회복)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25시란 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인간의 삶의 유한함 속에서 무한을 찾자는 의미도 있고 하루를 돌아보며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영혼을 어루만지는 시간을 갖자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바쁘다는 말을 너나없이 쉽게 얘기하곤 하는 요즈음 너무 거기에 묶여있지 말아야겠다.
조용히 하루를 돌아보며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피곤하고 상처 입었을 영혼을 어루만지며 뒤돌아보고 사색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진실로 현명한 사람은 지금 이 시간에도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25시간 이상으로 쪼개고 활용한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매일 일상생활에 치여 넘어지면서도 스스로의 영혼의 빛깔도 없이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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