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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문상금 - 내가 찾아낸 보물 1호 - 20071215

by 오름떠돌이 2007. 12. 16.

내가 찾아낸 보물 1호

 

                                                                                                            문상금 


 

  

 ▲ 삽화/이왈종 화백

 

 

 

 

눈 깜짝할 새에 12월이다. 그 첫 날, 아이들은 거실 한쪽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우리집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12월에 태어난 겨울아이인 큰 딸애는 토요일 학교가 끝나자마자 초대한 친구들과 들이닥쳤다. 몇 가지 과일과 음식들을 꺼내놓고 소박한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파티가 끝날 무렵 나는 꽁꽁 넣어두었던 트리장식들을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그러면 딸애와 그 친구들은 함성을 지르며 뛰어오른다. 그 초롱초롱한 눈들을 반짝거리며 서로 먼저 예쁜 장식을 차지하려고 야단들이다.

 

 

그런 모습이 너무 예쁘고 대견스러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러면서 이제 올해도 다 갔구나 탄식하곤 한다.

 

 

깊어가는 겨울 따라  유자차 향(香) 따라 어느 새 딸애들의  유년시절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마당에 노란 은행잎처럼 떨어져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아 차곡차곡 추억으로 부모 가슴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올 한해는 유난히 분주하게 돌아갔다. 날씨도 변덕을 부리곤 했다. 장마 끝나고 땡볕이 요란했던 서귀포엔 느닷없이 폭우성 소나기가 내리다 멎곤 했다. 한밤중에, 아침결에 혹은 대낮에 쏟아지는 그것들은 하천을 넘쳐흘렀고 나무들을 쓰러뜨렸다. 그 소나기 틈새를 이용해 아이들과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뱀 설화가 풍부한 토산 바닷가의 그 사납고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 빗속에 오조리 바다에서의 조개 채취, 도깨비 공원의 복면 쓴 도깨비들, 루니마리에 빛 축제, 김영갑 갤러리의 그 맑은 영혼, 검은이 오름과 큰사슴이 오름, 제지기 오름, 안돌 오름, 체 오름 탐방 그리고 중산간 도로변에 쏟아지던 차 앞이 분간이 안 되던 그 폭우(暴雨)의 강렬함, 일만 평 연못에 가득 피어있을 거라 기대하며 찾았던 하원동 법화사(法華寺) 연못엔 때가 일러 달랑 세 송이 연꽃만 힘겹게 피어나 있었다. 대신 연잎차를 만들고 왔다. 그리고 밤새워 시(詩)를 썼다.

 

 


-연잎차를 다리며-

                    

차(茶)는

첫 손에 잘 볶아져야

제 맛을 낸다.


구증구포(九蒸九曝)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빈다.


빗발치듯 땀을 흘리며

온 몸으로 연잎을 덖는다.


내 마음의 밭을 갈 듯

연잎을 비비며

기도를 한다.


무언(無言)의

시간들이 흐르고


간절함이 참으로 많았나 보다.

밤새도록 비벼도

연잎은 새파란 그대로다.

 

 

 


꼬박 네 시간의 작업을 끝내고 봉지에 연잎차를 넣고 그 향(香)을 맡으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 향은 은은하면서도 잔잔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그 숨죽인 열정(熱情)과 무르익음, 이 분주했던 봄여름가을겨울에 내가 찾아낸 보물 1호였다.

 

 

이제는 찾아낸 그것들을 소중히 품고, 앞으로 내가, 우리 아이들이 단단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남은 것이다. 벌거벗은 채, 칼날 같은 겨울바람에 의연하게 맞서면서도 더 강력한 폭풍을 기다리며, 찬란한 희망의 봄을 꿈꾸고 있는 길가의 그 겨울나무처럼.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