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아낸 보물 1호
문상금
▲ 삽화/이왈종 화백
눈 깜짝할 새에 12월이다. 그 첫 날, 아이들은 거실 한쪽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우리집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12월에 태어난 겨울아이인 큰 딸애는 토요일 학교가 끝나자마자 초대한 친구들과 들이닥쳤다. 몇 가지 과일과 음식들을 꺼내놓고 소박한 생일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파티가 끝날 무렵 나는 꽁꽁 넣어두었던 트리장식들을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그러면 딸애와 그 친구들은 함성을 지르며 뛰어오른다. 그 초롱초롱한 눈들을 반짝거리며 서로 먼저 예쁜 장식을 차지하려고 야단들이다.
그런 모습이 너무 예쁘고 대견스러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러면서 이제 올해도 다 갔구나 탄식하곤 한다.
깊어가는 겨울 따라 유자차 향(香) 따라 어느 새 딸애들의 유년시절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마당에 노란 은행잎처럼 떨어져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아 차곡차곡 추억으로 부모 가슴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올 한해는 유난히 분주하게 돌아갔다. 날씨도 변덕을 부리곤 했다. 장마 끝나고 땡볕이 요란했던 서귀포엔 느닷없이 폭우성 소나기가 내리다 멎곤 했다. 한밤중에, 아침결에 혹은 대낮에 쏟아지는 그것들은 하천을 넘쳐흘렀고 나무들을 쓰러뜨렸다. 그 소나기 틈새를 이용해 아이들과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뱀 설화가 풍부한 토산 바닷가의 그 사납고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 빗속에 오조리 바다에서의 조개 채취, 도깨비 공원의 복면 쓴 도깨비들, 루니마리에 빛 축제, 김영갑 갤러리의 그 맑은 영혼, 검은이 오름과 큰사슴이 오름, 제지기 오름, 안돌 오름, 체 오름 탐방 그리고 중산간 도로변에 쏟아지던 차 앞이 분간이 안 되던 그 폭우(暴雨)의 강렬함, 일만 평 연못에 가득 피어있을 거라 기대하며 찾았던 하원동 법화사(法華寺) 연못엔 때가 일러 달랑 세 송이 연꽃만 힘겹게 피어나 있었다. 대신 연잎차를 만들고 왔다. 그리고 밤새워 시(詩)를 썼다.
-연잎차를 다리며-
차(茶)는
첫 손에 잘 볶아져야
제 맛을 낸다.
구증구포(九蒸九曝)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빈다.
빗발치듯 땀을 흘리며
온 몸으로 연잎을 덖는다.
내 마음의 밭을 갈 듯
연잎을 비비며
기도를 한다.
무언(無言)의
시간들이 흐르고
간절함이 참으로 많았나 보다.
밤새도록 비벼도
연잎은 새파란 그대로다.
꼬박 네 시간의 작업을 끝내고 봉지에 연잎차를 넣고 그 향(香)을 맡으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 향은 은은하면서도 잔잔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그 숨죽인 열정(熱情)과 무르익음, 이 분주했던 봄여름가을겨울에 내가 찾아낸 보물 1호였다.
이제는 찾아낸 그것들을 소중히 품고, 앞으로 내가, 우리 아이들이 단단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남은 것이다. 벌거벗은 채, 칼날 같은 겨울바람에 의연하게 맞서면서도 더 강력한 폭풍을 기다리며, 찬란한 희망의 봄을 꿈꾸고 있는 길가의 그 겨울나무처럼.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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