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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수악주둔소
국가고시(?)를 준비한다고 술도 오름도 잠시 내려놓았던 친구를 9개월여만에 만나 오랜만에 오름투어(?)를 계획했는데 이 친구가 버스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늦게 만났고 또 제주 서쪽 지역은 비가 오락가락해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제주 4·3 수악주둔소를 가보기로 정하고 차를 돌렸습니다.
수악주둔소 진입로는 그동안 이승이오름을 숱하게 다녔던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송목교 옆에 위치한 신례천 생태탐방로 2코스 입구와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이 코스로 이승이오름을 다니면서 궁금증으로만 남겨두었던 4·3 수악주둔지를 이제서야 가보게 되었습니다. 진입하고 1km정도 가다보면 산책로가 세갈래로 나뉘며 수악주둔소 안내 표지판이 보입니다, 여기서 좌측으로 500여m 정도 더 가면 수악주둔소가 보입니다.
제주 4·3 수악주둔소 - 출처 :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4·3사건 관련 유적.
[개설] 제주 4·3사건은 1949년 3월 제주지구전투사령부[사령관 유재흥]의 귀순작전 등으로 무장대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고, 6월 무장대 총책임자 이덕구가 피살되면서 무장대는 궤멸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잔여 무장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주민납치 등으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마을습격 등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에 제주도 경찰국은 토벌대의 침식해결과 무장대와 주민들간의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제주도 산간 곳곳에 주둔소를 설치한다. 이 주둔소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부터 무장대의 활동을 제한하고 효율적인 토벌을 위해 각 경찰서별로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1952년 4월에는 전도에 32개의 주둔소가 있었다. 주둔소는 마을주민을 동원하여 석축을 쌓고, 경찰 1명과 마을청년 5~6명이 상주하며 경계를 했으며, 토벌대 60명이 동시에 취침 및 식사를 할 수 있을 규모의 주둔소도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잔여무장대의 활동이 왕성해지자 제주도경찰국은 적극적인 무장대 섬멸계획을 세우고 1952년 11월 4개 부대로 구성된 500여 명 규모의 ‘100전투사령부’를 창설했다. 위 주둔소는 ‘100전투사령부’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다.
[건립 경위] 제주 4·3 수악주둔소는 1949년 가을경에 만들어졌다. 주둔소의 위치는 수악의 동남쪽이며 신례천과 하례천의 계곡 사이에 있는 동산에 위치해 있다. 이 주둔소는 주변을 조망하기에 아주 적지라고 마을주민들은 설명하고 있다. 남으로는 신례리와 하례리, 효돈 쪽까지 깨끗하게 조망할 수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한남리 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수악의 주변과 북쪽으로는 물오름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제주 4·3 수악주둔소가 만들어질 때 작업을 하는 데는 인근의 신례리와 하례리는 물론 서귀포시 상효동 사람들까지 동원되었다고 한다. 성을 쌓고 나서는 경찰토벌대의 지휘하에 토벌을 다녔는데, 인근 마을에서 올라와 이 주둔소에 집결하고는 토벌을 하였다고 한다. 주둔소까지 물자를 나르는 지원사업은 대부분 가까운 신례리 사람들이 맡아서 했다.
[위치]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산 5번지 일대로 서귀포시 입석동에서 수망으로 이어지는 산록도로로 접어들어 2㎞ 지점에 철탑이 있다. 이 철탑에서 서쪽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2㎞ 정도 올라가면 신례리 마을공동목장 축사가 나오는데 북쪽 초지를 지나 계곡 너머 잡목 숲속에 위치해 있다.
[형태] 주둔소는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해서 쌓았으며, 외성은 회곽을 이루고 있다. 회곽의 바깥쪽 높이는 3.5m 정도였으며, 내벽은 2m 가량 되었다. 주둔소의 내부 면적은 대략 250평 정도이다.
[현황] 제주 4·3 수악주둔소는 사람들의 출입이 없었던 까닭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그 형태가 남아 있다. 외성과 내성의 전체적인 둘레는 물론이고, 외성의 회곽과 높이 등도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내부의 모습도 건물이 있었던 곳과 난방을 했던 아궁이의 모습 등이 남아 있다. 화장실 터도 확인할 수 있으며 외성에서 내성으로 들어오는 올렛목과 내성에서 건물로 들어오는 길목의 흔적들도 밑돌로나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간직한 유적으로, 그 상징성을 인정받아 2018년 6월 11일 제주 4·3 유적 최초로 국가등록문화재 제716호로 등록 고시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제주4·3사건 토벌대가 주둔했던 유적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서 지속적인 보존이 필요하다.






























내려오는 길은 친구가 앞장서면서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아닌줄 알면서도 내려가는 길이고 험하지도 않아 무작정 내려오니 진입한 곳에서 서쪽으로 약 500여m 떨어진 곳으로 나왔습니다.
집에와서 수악길 GPX파일과 대조해 보니 수악 트레킹코스에서도 진입이 가능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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