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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 금악마을 4.3길, 웃동네 가는길
제주한림 금악마을
금악리는 1550년경 진주강씨 일가가 동네의 북쪽에, 남양홍씨가 남쪽에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온다. 그 후 양씨, 박씨 그리고 김씨, 이씨, 송씨 등이 입주했다고 한다. 금악리는 금오름을 중심으로 새미소오름, 밝은오름, 누운오름, 정물오름, 정물알오름, 도너리오름, 문도지오름, 선소오름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작은 샘과 하천이 많아 예부터 밭농사와 목축이 성행했던 부촌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때 심한 착취로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1946년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이웃 간의 왕래가 금지된 적도 있었다. 그후 1948년 4.3으로 마을은 혼란 속에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주민들은 개역빌레궤, 밥쉐물, 금오름, 알곳 등으로 피신했다. 무장대는 마을을 기습하여 주민을 납치, 학살하였으며 다수의 우익인사의 집을 불태웠다. 저지지서 응원경찰은 마을을 기습하여 집을 불태우고 부녀자, 노인뿐만 아니라 불구자, 임신부까지도 저지지서로 연행하다 빨리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오자교와 그 인근에서 학살했다. 또한 모슬포에 주둔하던 9연대 군인들은 새벽에 마을을 덮쳐 주민 9명을 모슬봉 자락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 그리고 11월에 소개령이 내려진 후 소개지로 내려간 대부분의 주민들은 군인에게 고문당하고 학살당하는 등 계속 고달픈 삶을 살았다 1949년 봄부터 금악 주민들은 명월 상동인 고림동에 임시로 살다가 1953년 7월이 지나서야 당국의 허가로 뱅디가름과 뒷논, 돗밭동네를 중심으로 마을을 재건 할 수 있었다. 금악리는 4.3을 거치면서 300여호의 가옥이 없어지고 152명의 주민이 학살 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웃동네, 중가름, 오소록이동네, 별드르, 별진밭, 새가름, 동가름 등의 마을은 복구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마을로 남게 되었다
제주 4.3길 걷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니 제주의 모든 4.3길을 완주(?)하고 싶은 조바심에 주말이 다가오면 4.3길 자료에 있는 그림지도를 구글어쓰에 입혀 GPS파일을 만들어 스마트폰에 업로드하고 주말 날씨가 좋기만 기다려집니다. 오늘 코스는 한림읍 금악리에 위치한 금악4.3길, 이 코스도 총거리 13km여서 두 개의 코스로 나누어 걸으려 합니다.
금악리 4.3길 센터라고 안내지도에 나와 있지만 실제론 “금악리 건강증진센터”에서 “웃동네가는길”코스(6.5km/2h) 출발합니다.
중가름 : 중가름은 웃동네와 벵듸가름의 중간에 있는 동네라는 의미, 15가구 가량 살았으나 4.3당시 소개령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된 동네로 한새미, 덕구이물, 갈래새미 등지에서 식수를 해결함. 말방아도 있었고 금악리에서 유일하게 불미(대장간)이 있었다고 한다.
하르방당 : 이곳의 지명은 당동산이다. 수렵(사냥, 목축)신인 한라산 신이 호근이모루 정좌수의 딸과 결혼 후 인간세상인 금오름에 내려온 후 이곳에 좌정하여,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 손자 일흔여덟을 이웃 마을에 보내어 당신(堂神)으로 좌정토록 하였다는, 주요 민속신화 지역이다. 하르방당을 오일당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12지신 중 말의 날에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빈 데서 유래한 것으로 지금도 그 문화가 계승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할 때는 경건한 자세로 예를 갖추어야 한다.
오소록이동네 : “오소록하다"와 "검은 매(소록이=매의 제주어)가 사는 곳" 이라는 뜻이 함께 전해지는 동네이다. 4.3이 나던 1948년 음력 5월 초하루 이곳에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만이 빈 집터를 지키고 있다.
할망당 : 이곳의 지명은 또신머들이다. 농경신인 정좌수의 작은따님 아기씨가 한라산신과 혼인을 한 후 금오름을 거쳐 좌정하여,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 손자 일흔여덟을 이웃 마을에 보내어 당신(堂神)으로 좌정토록 하였다는, 주요 민속신화 지역이다. 할망당을 축일당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12지신 중 소의 날에 이곳에서 소원을 빈 데서 유래했다. 지금도 그 문화가 계승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할 때는 경건한 자세로 예를 갖추어야 한다.
4.3 치유의 쌍 연자방아 복원사업
웃동네 : 잃어버린 마을 비석이 세워진 이곳은 4백여 년 전에 설촌된 유서 깊은 마을로 강씨, 김씨, 박씨, 이씨, 송씨, 홍씨 등 38호에 141명의 주민들이 밭농사를 하고 우마를 키우며 정겹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21일경 소개령에 의해 마을은 전소되어 폐촌이 됐고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협재리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와중에 무고한 주민 8명이 희생되었다. 그 후 금악리 재건명령에도 웃동네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지금은 당시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고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며 뛰놀던 팽나무와 월대 그리고 처참히 부서진 말방아들만이 버려진 채 그 날의 비극을 대변하고 있다.
생이물
포제단 : 마을제를 지내는 곳으로 매년 음력 정월 초정일(丁日)을 택하여 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생이못 주변에 집을 짓고 일주일 전부터 제관들이 기거하며, 정성을 들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한 후 행하였다. 4.3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면서 중단되었으나 마을이 재건되면서 다시 지내고 있다. 당이 주로 여성들의 공간이라면 포제단은 남성들의 공간이다. 평소 포제단의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지만 음력정월에는 마을제를 지내야하므로 평소처럼의 출입은 하지 않아야 한다.
1코스(웃동네 가는길)와 2코스(동가름 가는길) 분기점, 오늘은 여기까지~~
벵듸못 : 넓은물 혹은 큰못이라는 의미로 한라산에 살던 멧돼지들이 내려와 땅을 헤쳐서 습지를 만들어 놀던 자리를 물통으로 만든 곳이라 한다. 목축이 성행하던 과거에는 저지, 봉성 등에서도 이 물을 소와 말에게 먹일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밭에서 돌아온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기도 했고, 해가 지면 처녀, 총각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기도 했다.
벵듸가름 : 벵듸가름은 향사와 학교 그리고 풍부한 물이 있어 자연스럽게 마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동네이다. 1919년 3.1만세운동을 기념하여 네그루의 나무를 모양으로 심었다. 4.3당시 이 나무 중 먹구슬나무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매달려 고문을 당했고 며칠 후 나무들은 베어져 버리고 향사와 학교마저 불에 타 사라진다. 지금의 월대 나무들은 마을을 재건한 후 심은 나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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