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금시인 /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막둥이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문필봉 / 서귀포신문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막둥이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문상금 / 시인
2014년 10월 18일 (토) 09:32:45 문상금 sgp1996@chol.com
빗방울이 하나둘 쏟아지자 채송화 무리들이 일제히 꽃잎을 접었다. 흰색 나도샤프란도 서서히 꽃잎을 접기 시작하고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호박꽃만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안녕”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빗줄기를 타고 불현듯 가을이 내게로 왔다.
▲삽화/정지란
막둥이는 엷은 황색의 털을 가진 진돗개이다. 우리 집에 온 지는 넉 달이 되었다. 처음 분양받아 왔을 때는 마치 갓난아기처럼 밤새도록 잉잉대는 것이 일주일 동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되어간다. 막둥이는 다섯 식구가 아침에 밀물처럼 빠져나가면 종일 빈 집을 지킨다. 골목 긴 집에 간혹 낯선 사람들이 오면 맹렬하게 짖어댄다. 나머지는 종일 한가롭게 낮잠도 자고 이빨 교정 삐삐 장난감을 깨물다가 노랑나비와도 놀고 나팔꽃 흔들리는 것 따라 고개 까딱이다 골목 쪽에서 가족들 인기척이 들리면 벌떡 일어나 꼬리를 마치 해바라기 꽃처럼 원을 그리며 돌려대어 우리는 골목길 들어설 때부터 마당까지 웃음꽃이 터질 수밖에 없는 복덩어리가 되었다. 참 쾌활한 우리 집 막둥이, 먹성이 그리 좋았었는데 이삼일 전부터 사료를 조금씩 남기기 시작하였다. 혹 시인 엄마 따라 가을을 타는 것일까.
너무 잘 먹어도 소화 안 될까 봐 걱정이고 안 먹어도 걱정이고 어쨌든 한 식구 늘어나면 결국 집안의 평화는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라 나는 동물 기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진돗개를 분양받고 오면 집에서 돌보다 자라면 농장에 데리고 가기로 했었는데 그리고 먹이 주는 거며 목욕시키기 그리고 예방접종 관련이나 배설물 청소까지 딸애들과 애들 아빠가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해서 막둥이를 데려 왔는데 그 모든 일이 슬금슬금 나한테로 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저 그렇다.
설상가상으로 사료도 남기기 시작해 시간 날 때마다 세심한 관찰에 들어갔다. 배설물도 별 특이사항이 없고 뛰어노는 것도 잘 놀고 잠도 잘 자는 것이었다. 사료가 바뀐 것 말고는 없는데, 골몰히 생각하다 아, 혹시 우리 셋째 딸 은지가 수학여행 갔다 오던 폭우 쏟아지던 밤이 생각났다. 지난봄에 연기되었던 수학여행이 좋은 날씨를 택해 떠났는데 하필이면 도착하는 날에 폭우가 쏟아지며 비행기는 연착되고 교통은 막혀 겨우 만났을 때 딸애는 여행가방 끌며 온몸이 젖은 채로 훌쩍이며 가로등 밑에 서 있었다.
골목길 들어설 때 여행가방 자갈돌에 끌리는 소리가 심하게 끄르륵 끄르륵 나서 반갑게 꼬리 돌리던 막둥이가 컹컹 짖으며 펄쩍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딸애가 씻을 동안 저녁밥을 차리다 무심코 보니, 거실 유리창에 한가득 막둥이가 쳐다보며 예의 꼬리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아차, 사슬이 풀렸구나, 부리나케 마당으로 나가보니 아까 펄쩍 뛸 때 사슬이 끊겨 온 골목을 헤집고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 힘이 세다는 사실도 놀랍고 또 진돗개는 이빨이 날카롭기 때문에 혹 이웃집에 피해 줄까봐 모임에 간 애들 아빠한테 연락해 다시 단단히 사슬을 고정했던 사실이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우리 막둥이가 그 때 놀랐구나, 아주 많이 놀랐었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그래서 며칠은 좀 불안했고 사료도 조금씩 먹었던 거였구나. 꼭 안아주었다. 꼬리 흔들며 안기는 우리 집 막둥이, 결국 이렇게 내 몫이 되는구나, 내가 챙겨야 할 내 막내아들이구나.
“막둥아” 소리 내어 불러 주었다. 알아들었을까! 귀 쫑긋하며 눈 맞추며 막 안기는 것이었다. 내가 이름을 크게 불러준 순간부터 막둥이는 곧장 내게로 왔다. 가을이 빗줄기처럼 자줏빛 일몰처럼 억새꽃처럼 내게로 온 것처럼.
가을이 오면 길을 걷고 싶었는데, 발바닥에 피멍들도록 먼 길을 떠나고 싶었는데, 그렇게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온통 가을을 타고 있었다. 가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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