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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또 다시 오월이 왔다 - 시인 문 상 금

by 오름떠돌이 2014. 5. 24.

시인 문상금 / 또 다시 오월이 왔다 / 문필봉 / 서귀포신문

 

또 다시 오월이 왔다

 

<문필봉>시인 문 상 금

20140524() 06:16:43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아마 오월은 장미꽃에서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담벼락을 칭칭 타고 오르는 그 몸짓, 그 몸부림, 그 향()이 짙게 떠오른다. 여기서 떠오른다는 표현은 지금 내가 그윽하게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붉디붉게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장미꽃을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수줍게 열리는 꽃잎들 사이 스멀스멀 번져오는 향기까지 맡을 수 있음이다.

 

언제부턴가 그랬다. 하루에 서너 차례 바다로 줄달음쳐야 숨통이 트이곤 했었던 날들이 아마 사십 평생에 절반은 넘을 것이다. 그리고 꽃을 보러 사시사철 밤낮으로 들판을 휘젓고 다녔던 것이 일상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딱 끊었다. 바다도 보지 않고 꽃도 보지 않고 사람만 보았다. 오직 사람만 만났다. 내가 굳이 약속을 청하지는 않았다. 전화가 오면 밤낮으로 달려 나갔다. 잠을 자다가도 시()를 쓰다가도 나는 하나도 싫어하지 않고 당장 하던 일을 중단하고 달려 나갔다. 밥이나 국수를 같이 먹기도 하고 술 한 잔 마시지도 않으면서 새벽이 밝아오도록 술벗들의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였다. 노래방도 가 주었다. 밤 열시에 과일가게를 닫는 영지의 노래 벗이 돼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창 넓은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참 보기 좋았다.

 

먼저 연보라색 어둠의 한 자락이 거리로 내리기 시작하고 그 위로 또 회색빛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갑자기 속도가 빨라졌다. 빨간 열매의 먼 나무 위로 강아지 위로 자유자재로 걸어가는 사람들 어깨 위로 검은 어둠이 하나둘 눈송이처럼 내리더니 금방 사방은 깜깜해졌다. 맑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들은 어제의 풍경 같기도 했고 혹 내일의 풍경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삽화/김품창 화백.

    

항상 나는 메모를 한다. 아니 쉴 새 없이 끄적거린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그 끄적임들은 하나둘 시로 태어나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 눈부시고 슬픈 봄을 견디며 깨알 같은 응어리들을 적었다.

아직은 쌀쌀하다. 그래도 내 마음엔 이미 봄이 와 있다. 홍매 꽃잎이 새끼손톱만큼 그러다 엄지손톱만큼 커지더니 온 몸을 열어 붉은 울음 같은 꽃잎들을 터뜨렸다.”

꽃말은 천상의 꽃, 한라산 암벽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멸종위기식물인 상록관목이다. 여름에 흰 꽃을 피운다. 참 좋겠다. 밤마다 쏟아지는 별무리 실컷 볼 수 있으니, 오름만큼이나 가슴 속에 묻어 놓은 말들 크게 함성 지룰 수 있으니......”

금방 지은 곤 밥의 냄새, 크게 들이마신다. 이것은 어머니의 냄새다. 그립다, 참 그립다. 양가 부모님이 전부 돌아가셔서 나는 천애 고아다. 아니다 내가 부모가 되어 뚜벅 뚜벅 걸어간다. 세상 속으로, 선명한 푸른 별 하나 응시하며 이 우주의 중심에 나는 우뚝 서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중간에 나는 시를 썼다. 그리고 봄이 다 가기 전에 또다시 어김없이 돌아온 오월에 나는 중앙 문단 심상지에 홍매’ ‘한라산 암매(巖梅)’ 그리고 곤밥신작시 세 편을 발표하였다.

 

 

한라산 암매(巖梅)-문 상 금

 

때로 거칠어야 기죽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무야,

이처럼 고운 꽃아,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고행(苦行)의 길

피투성이 되어 암벽을 오르내리는 일

 

그 아찔한 높이에서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려야만

꽃을 피우고 잎도 틔울 수 있는 일

 

별무리 쏟아지는 밤이면

온 몸 열고 세상 향해 큰 함성 지룰 수 있는 것을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니 가장 큰 나무야,

돌매화야,

 

나는 매일

피투성이인 채로

한라산 암벽을 오르내린다.

 

먼 훗날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한 편의 시가 안 남은들 어떠랴, 피고 지는 숱한 꽃들처럼 태어났다 숙명(宿命)처럼 시를 짓고 고행(苦行)처럼 시를 짓고 그리고 동백꽃처럼 툭 목숨 지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