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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이중섭거리에서

by 오름떠돌이 2013. 9. 14.

문상금시인 / 이중섭거리에서 / 문필봉 / 서귀포신문

 

 

 

 

 

이중섭거리에서 

 

 

 

 

<문필봉> 문상금/시인

20130914() 09:56:36 문상금 webmaster@seogwipo.co.kr 

 

 

계절은 여지없어 길가에 가냘픈 코스모스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하얗고 분홍의 꿈들을 피워 올린다. 마치 풍선의 그 색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구월과 함께 시작하는 이중섭 세미나에 다녀왔다. ‘이중섭과 서귀포란 주제로 매년마다 열리는 행사지만 다시 한 번 짧은 생애를 마감한 천재화가 이중섭을 떠올려보고 그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서귀포에 가족들과 와서 머무르며 발견한 행복과 이상세계와 그 그림에의 열정을 헤아려보며 숙연해짐을 느낀다.

     

 

삽화/정지란

 

 

 

세미나와 만찬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와르르 이중섭거리 초입 예그리나 찻집에 모여 제 16회 숨비소리 시낭송회를 열었다. 시인, 화가, 수필가, 시민, 관광객들이 모여 가을시를 낭송하고 클래식 기타와 바이올린 연주도 듣고 가끔은 라이브음악도 듣곤 하는 시낭송회에 오늘은 꽉 찼다. 모두가 가장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한 달에 한 두 시간만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음 하는 생각으로 숨비소리 시낭송 모임을 시작했는데 벌써 횟수가 제법 되었다. 작고하신 변시지 화백께서도 마지막 병세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모임에 오셔서 창가에 앉아 빙긋이 바라보시곤 하셨는데 벌써 그 안타까웠던 여름이 가고 이제 가을이 왔다.

 

이중섭거리를 걸어본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주일에 대부분을 이 거리에서 보내고 있다. 그만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거리를 걸어볼 때마다 이중섭거리가 활기에 넘치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 또한 힐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북적거림은 없어도 무언가 내면 깊은 곳에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문화 힐링의 거리를 찬찬히 걸어본다. 아스팔트 보도나 하늘 가로등 위에도 이중섭의 그림이 매달려 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채의 세상이다. 공방, 카페, 식당에도 이중섭 거리임을 알리는 사인물들이 보인다. 서귀포에서 이중섭이 보았던 그 유토피아의 세계가 이런 색채였을까. 자꾸만 어기적거리며 모로 가는 게들이 떼를 지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좀 있으면 이중섭의 사랑을 다루는 다큐멘타리가 제작되어진다고 한다. 사랑은 국경과 종교도 초월한다는 말이 여기에 쓰일까.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옛 말이며 하나의 소망이고 어리석을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사랑은 영원했으면 한다. 가슴 깊은 곳에 찬란한 보석처럼 영원히 빛을 발했음 한다.

 

섶섬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미술관 안에는 여러 점의 원화와 은지화 그리고 이중섭이 사용했던 파레트가 전시되어 있다. 이 파레트는 이중섭이 1943년 제7회 미술창작가협회 전에 망월이란 작품을 출품했을때 특별상인 태양상을 수상했고 그 부상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다 연인이었던 이남덕(마사코)여사에게 사랑의 징표로 주었다 한다. 오랫동안 그 사랑의 징표를 간직하고 계시다 작년 11월 이남덕 여사는 이중섭미술관에 기증을 했다. 그 때 방문 때 같이 사진도 찍고 동행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편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활고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그리워했던 편지의 내용을 읽어보지 않고 모퉁이 작은 그림만 봐도 느낄 수 있다. 두 아들과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초가 거주지 1.4평짜리 방에서 꼭 껴안은 네 명의 그 체온은 과연 몇 도까지 올라갔을까.

 

 

지난 봄 여행 차 제주에 온 대구의 어떤 노부부는 이중섭거리 초입 어느 유리창 맑은 찻집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 한 편을 남겼다.

 

서귀포의 청각장애 아가씨에게

 

당신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속삭임을 듣는군요

파도의 아우성과 모래의 재잘거림

 

나는 왕왕거리는 차 소리와

취객의 다툼과 원망을 듣느라

아무 소리를 못 들었어요

 

나는

당신이 내민 커피 한 잔에 들어 있는

파도와 모래와 새싹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내가 귀먹은 것이지요

내가 귀가 없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내게 소리 가득한 커피를 주셔서...

 

이중섭거리에서는 한없이 마음이 따뜻해진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또한 자유인이 된다. 영혼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며 상처에 새살 솟듯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난다. 분홍색 풍선되어 하늘 위로 둥실 둥실 날아오른다. 그 설렘과 따뜻함 때문에 나는 매일 이중섭거리를 꽁지 빨간 고추잠자리처럼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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