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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나의 힐링(healing)

by 오름떠돌이 2013. 7. 20.

문상금시인나의 힐링(healing) / 문필봉 / 서귀포신문

 

 

 

나의 힐링(healing) 

 

 

 

<문필봉>시인 문 상 금

20130720() 09:21:19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삽화/김품창 화백.

  

 

어둠이 내릴 때 뒷마당에 누가 다녀갔나 싶었다. 쪽문으로 내다본 풍경들은 어머니 떠나신지 두 달 남짓, 모든 게 그대로다. 말라 비틀어가는 마늘들은 툭툭 뽑아 소쿠리에 담아 놓았고 붉은 콩은 콩깍지 그대로 다 따 놓았다가 한 콩깍지씩 까서 밥할 때 섞곤 한다. 굳게 닫힌 문들이 마치 거인처럼 우뚝 안개비 속에 서 있고 돌담 위로 호박잎과 줄기들이 무성하게 무서운 속도감으로 뻗어나고 있다. 아아, 그렇게 다녀가셨나 보다. 마당 한 곁 치자꽃봉오리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향()으로 바람처럼 다녀가셨나 보다.

 

언제부턴가, 몸을 혹사한다는 느낌을 아니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잠자는 시간 서너 시간을 빼고는 거의 나는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지인(知人)들은 좀 쉬면서 하라고 하지만 하루에도 빼곡한 일정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칠 줄 모르고 달리고 또 달린다. 신발도 두 켤레가 구멍이 뚫렸고 납작하게 닳아졌다. 명쾌하지 못한 어떤 한 부분들을 분주함을 빌어 말끔히 털어 내고 싶다는 것, 그 분주함이 내가 존재하는 요즘 이유라면 지인(知人)들은 또 걱정들을 쏟아낼까, 잘 모르겠다.

한동안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많이 쓰이다가 이제는 웰빙을 넘어선 힐링(healing)이 비즈니스 코드로 많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힐링은 건강만이 아닌 마음의 위안까지 말한다. 또한 힐링은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의미한다. 편안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음식을 먹으며 지친 몸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힐링은 물론 시()와 그림과 바다이다. 일곱 살 때부터 무언가 쉴 새 없이 쓰고 또 쓰며 조숙한 아이가 되어 바라보았던 세상, 그 알다가도 모를 세상과 사람이야기를 시로 옮겨 표현해내는 시작업(詩作業)이 내 힐링의 으뜸이다. 내가 지금까지 세상으로 태어내 보낸 시는 300여 편이 된다. 이미 세 권의 창작시집을 펴냈으며, 네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나는 다작(多作)시인은 아니며, 한 달에 한 두 편의 시를 완성하곤 한다. 올해 벌써 중앙 문학지에 7편의 시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 심상(心象) 시전문지 3월호에 발표한 서귀포 수선화시 세 편이 집중 조명된 평을 받게 되었다. 그런 것에 연연할 필요는 물론 없겠지만, 묵묵히 자기가 선택한 길을 걸어가다 보면 그런 찬란한 성과도 얻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 다음은 그림이다.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송나라의 소동파가 당나라의 대시인 왕유의 시를 평하면서 말하지 않았던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보러 다녔던 그 수많은 그림들은 한 점 두 점 어느 새 나에게로 와 내 벗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집은 이미 작은 미술관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나는 바다로 간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같은 아늑한 바다로 가 시도 쓰고 잠도 자고 갖고 간 그림도 이리저리 돌려가며 보고 또 본다. 뱃속의 태아처럼 그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하다.

 

가끔은 그 바다에서 바위틈에 손을 집어넣고 고메기도 잡고 검은 돌들을 뒤집어 겡이도 잡는다. 마치 이중섭처럼 우뭇가사리며 홍합도 딴다. 오늘도 나는 오랜만에 바다로 가 식빵에 딸기 쨈을 아주 두껍게 발라 먹고는 고메기 한 줌과 겡이 일곱 마리 그리고 갯바위에 딱정이처럼 붙어있는 군벗을 서너 개 잡았다. 집에 가 삶아 딸애들과 도란도란 하나씩 까먹어야겠다. 그렇게 가끔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다독여야겠다. 보목리 바다에서 만난 손바닥가시선인장에 피어난 노란 꽃처럼, 채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도 딱지처럼 툭툭 꽃이 피어나듯이, 그렇게 단단히 버텨야겠다.

 

안개비가 촉촉이 바다에 풀잎 위에 내 영혼에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한 편의 시()를 짓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다. ()을 살아간다는 것은 또한 시()를 짓는다는 것은 수도자의 고행과도 같다는 생각을 늘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시어(詩語)의 밭을 갈고 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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