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금시인 / 화가와 시인(詩人) /, 문필봉,/ 서귀포신문
화가와 시인(詩人)
<문필봉> 문상금 / 시인
2013년 03월 23일 (토) 14:21:34 문상금 [서귀포신문]
■ 삽화 / 김품창 화백
한희원 그림 전시회를 보러 광주를 다녀왔다. 예전에 광주에 고속철도(KTX)를 타고 내렸을 때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었다. 순식간에 흰 눈에 파묻혀 자취를 감추는 나무며 담벼락이며 보도 블럭의 옛날이야기 같은 풍경들을 바라보며 설설 김이 나는 설렁탕에 깍두기를 말아 먹었었다.
동백이며 매화 그리고 수선화와 유채꽃 천지인 서귀포의 풍경과 광주의 풍경은 완연히 달랐다. 무등산은 무채색인 그대로 턱 버티고 있었고 길가 모퉁이 낙엽들 사이로 이제야 수선화 잎들이 뾰족이 고개 내밀고 있었다.
어두운 밤일수록 별은 더욱 맑고 밝게 빛난다. 삶의 참된 의미는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데 있다. 있음(有)을 통해 없음(無)이 지닌 아름다움을 통찰해 내는 데 있다. 한희원의 어두운 화실에서 별을 만났다. 그동안 내가 한없이 그리워했던 따뜻한 별을 만났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물감 위, 막 태어나는 그림들은 이성의 촛불을 꺼야 창밖의 별빛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리고 그는 강을 그리되 강을, 산을 그리되 산을 그리지 않았다. 마을을 그리되 마을을, 사람을 그리되 사람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섬진강의 매화마을, 안개, 느티나무, 은행나무, 겨울 강(江), 과꽃, 나팔꽃, 달, 집, 교회가 있는 마을, 골목길 그리고 역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강한 터치와 두꺼운 덧칠 그리고 약간 흐릿함 속에 태어나고 있었다. 그림에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물감을 아끼지 않는 화가의 모습이 참 신선했다.
‘상처받은 별들은 강에 뜬다’란 그림을 보며 문득 반 고흐가 그 삶의 마지막 1년, 정신병과 싸우며 그린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이 생각났다. 철창이 쳐진 정신병원의 창 너머로는 상 레미의 시가와 별이 깔린 하늘이 보이고 별 하나하나는 심장의 움직임처럼 빛을 변화시키고 있고 끝 모를 하늘의 푸름은 강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어 조용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는 신비한 밤을 독특한 느낌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어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그 그림이.
섬진강변 막 봉오리를 피워 올리는 매화 무리를 보며 걷노라니 중간 중간 김용택 시인의 시비가 서 있었고 마을 어귀 김 시인이 심었다는 느티나무의 묵은 세월 너머 바라보이는 생가에 들러 잠깐 시간을 죽였다. 평생을 섬진강에서 시를 쓴 시인이나 서울로 갈 기회가 많았지만 오직 광주에만 엎드려 하루 종일 그림에 색깔을 덧칠하는 화가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름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사직골 라이브카페에 갔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라이브카페의 주인의 커다랗고 하얀 눈망울이 자꾸만 안타까웠다. 화가는 피아노를 치며 ‘첨밀밀’과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노래 두 곡을 불렀다. 그림을 그리다 시간이 나면 시를 썼고 또 시간이 남으면 그 때 느낌 그대로 피아노를 쳤다는 화가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시를 쓰다 짬짬이 시간이 남으면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어렸을 때 치던 피아노를 아직도 거실 한구석에 잘 보관해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혹시나 애들이 또 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언젠가 나도 피아노를 쳐보아야지 하는 생각이 늘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예쁘게 기른 손톱을 잘라야겠지만.
길을 떠나면 늘 길을 만난다. 길 끝에서는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꼭 하나씩은 배운다. 언제나 별들은 밤낮으로 우리들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듯이 우리도 언젠가 따뜻한 별이 되어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타오를 것임을 안다. 새벽까지 ‘수선화’ 시(詩)를 썼다.
“누굴 기다리나/자꾸만 짙어가는 그리움 따라/총총히 걸어가 보는/서귀포 해안선(海岸線),그 막막함 쯤이야/향(香) 하나로 가릴 수밖에/늘 바다에는/눈 감아도 선명한/푸른 별 하나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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