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해인사(海印寺)에서

by 오름떠돌이 2013. 1. 19.

문상금, 해인사(海印寺)에서, 문필봉, 서귀포신문

 

                                               해인사(海印寺)에서 

                                              <문필봉> 시인·수필가 문 상 금 

                                             20130119() 09:21:51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하루 종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란 노래를 흥얼거렸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여전히 흥얼거리며 비행기 아래로 차츰 멀어져가는 바다는 짙고 푸르고 그러나 늘 변함없는 편안함이었다. 마치 어머니의 축축한 자궁처럼.

 

휑한 잿빛 갯벌 같은 시절 바다는 한 줄기 기쁨이었다. 황홀했다. 비틀어진 시공(時空)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십대부터 시작한 내 흥얼거림은 바다처럼 늘 위로와 일탈의 돌파구였다. 어떻게 보면 일체 외부의 간섭이나 일상에 동요되고 싶지 않다는 하나의 방어벽을 펼친 것인지도 모른다. 거리를 걸을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도 쉴 새 없이 흥얼거리곤 했다. 그것을 보고 은사님은 자네는 시를 쓸 수 밖에 없네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그 이후로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창작에 관한 혼돈과 무지와 타는 목마름이 일 때마다 더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작업(詩作業)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인사를 다녀왔다. 하늘이 참 높고 푸르렀다. 가야산 품속에 있는 그 곳은 역사의 숨소리가 함께 살아 있었고 여러 문화유산 중에서도 특히 대장경과 동종 그리고 학사대 전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원래 강화도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때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하나가 오자나 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컸다. 그리고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였다.

 

동종의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두 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부분에는 연꽃을 새겼다. 밑으로는 돌출된 9개의 유두가 사각형모양의 유곽 안에 있으며, 유곽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이 있다. 종 중앙에는 3줄의 굵은 가로줄을 돌리고 그 위쪽에는 꽃무늬를, 아래로는 용무늬를 새겨 종 전체가 무늬로 가득 차 매우 화사한 느낌을 주었다.

 

학사대의 전나무는 해인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는 1000년을 헤아리며, 높이가 19m, 둘레가 5.5m로 보기 드물게 오래 된 나무이다. 신라 말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라의 멸망을 탄식하여 심은 나무로 선생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 놓은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다.

 

경내 전시실에는 법용 종근 스님의 달마그림이 글귀와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하찮은 일에 집착하지 마라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라/ 그리고 비워두라 /언제 다시 그대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 말고 애처롭게 한 사랑이라도 할 수 있음을 감사하라천천히 한 줄씩 읽고 있는데, 법용 종근 스님이 차 한 잔 타 주시면서 공양 안 했으면 같이 공양하고 가세요.” 하셨다. 말씀만 참 고맙게 받았다.

 

멀리서 노스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더디게 한 걸음 옮길 적마다 하고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예사롭지 않은 그 모습이 죽비처럼 내 정수리를 후려쳤다.

 

해인사 길을 걸어 내려오는데 나뭇잎이 하나둘 날려 꼭 눈이 내리는 느낌이었다. 깊은 겨울이 어느새 내 영혼 깊은 데까지 닿아 짙은 단풍으로 내려앉는 것이었다. 문득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보고 싶은 바다는 이젠 욕망과 낭만의 바다가 아닌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선, 장엄한 진리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맑은 속살 같은 구원과 지혜가 담긴 숭고한 바다인 것이다. 또 그것은 방황과 절망의 삶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필요해서이다. 무질서와 다툼을 끌어안는 화합의 바다, 바로 해인(海印)의 세계이다.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우주의 참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친다는 해인(海印), 쪽빛 물색과 흰 구름으로 구분되어 있는 수평선 저 너머의 해인(海印), 그 곳엔 왠지 일곱 색깔 무지개가 걸려있을 것 같은, 그것은 바로 내가 영원히 걸어 나가야 할 시()의 바다인 것이다. 내 마음의 바다빛이 하늘빛이 참 곱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