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금시인 / 장미꽃이 필 무렵 / 문필봉 / 서귀포신문
장미꽃이 필 무렵
<문필봉>시인 문 상 금
2013년 05월 18일 (토) 09:02:14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삽화/정지란.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 겨울은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라고 표현하였다.
고개를 들어 찬찬이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오월이었다. 줄지어 피어나는 흰 울타리 장미꽃들이며 고사리 다 손 펴버린 중산간(中山間) 어디쯤 막 봉오리 밀어 올리는 찔레들의 그 하얀 속삭임들을 귀 기울여 듣고 왔다.
‘가슴 아프다’란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태껏 잘 몰랐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계란 노른자를 먹을 때처럼 목이 메이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오싹한 느낌에 몸이 떨리곤 했는데 이런 게 바로 그런 것일까.
팔순잔치를 하고 건강하시던 친정어머니가 봄이 다 갈 무렵 내가 들렸을 때 윗옷을 벗으시며 겨드랑이 밑을 한 번 만져보라고 하셨다. 무심코 손을 뻗었는데 계란 같은 덩어리가 만져졌고 온 몸이 오싹해졌다. 그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나 그리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에도 골목길을 부축하여 나갈 때에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튿날 어머니를 모시고 검사에 들어갔는데 이미 여러 군데 종양들은 번져 있었다. 필름사진을 통해 곳곳에 둥지 튼 종양들은 더 이상의 치료는 힘들고 고통이 덜하기만을 도와줄 수 있다고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손을 꼭 잡은 어머니랑 한라산을 넘어오는데 길가 나무 밑에 산수국(山水菊)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푸르스름한 그것은 도체비꽃이라고도 불렀다. 차창 밖을 가리키며 “산수국이 참 많이 피었네. 어머니는 꽃 중에 무슨 꽃이 젤 좋아?” “꽃은 다 예쁘고 좋지, 그래도 난 장미꽃이 제일 예쁘더라. 튤립도 예쁘고”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봄 내내 보러 다녔던 장미꽃을 어머니도 그렇게 좋아하셨다니! 그 날 오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몇 군데 장미꽃을 보러 다녔다. 아파트 담벼락이나 오래된 돌담 위 그리고 슬레트 지붕 처마 끝에 보석처럼 다닥다닥 피어있는 장미들을. 그리고 겨울 첫 눈이 내릴 무렵 고열과 통증이 찾아오면 아기처럼 나는 어머니를 팔베개하고 등을 톡톡 다독여주곤 하였는데 그렇게 편안하고 예쁜 모습으로 저 세상으로 길 떠나셨다.
잔인한 사월을 며칠 남겨둔 바람 몹시 불던 어느 날이었다. 로타리 이사회를 하고 있는 중에 딸애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머니가 차에 치였다고 울음범벅인 목소리를 달래며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이미 맥은 희미하게 뛸 뿐이었고 축 늘어진 손은 차가워져 있었다. 그렇게 시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한순간의 허망한 일생이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일장을 묵묵히 치르며 귀양을 내며 칠일제를 지내며 단지 좋은 곳으로 가시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그 빈자리가 참으로 크다. 한 울타리 안에서 매일 얼굴 맞대고 상추며 마늘이며 콩잎을 뜯곤 했었는데 이제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자고 나면 매일 자라나는 그것들을 뜯어 지인(知人)들에게 나누어 주곤 한다. 하루에 한 두 번씩 마당과 굳게 잠긴 어머니집 밖거리까지 온 집안을 둘러보며 보살피는 것도 나에게 아주 달라진 일상이다. 말수가 거의 없었던 남편이 조금씩 말을 한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평생을 시작업을 하면서 유독 근래 몇 년간은 내 몸과 영혼은 바람처럼 떠돌아 가족들한테 세밀하게 신경 쓸 여유가 통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정말 바람처럼 언제 어떻게 떠나버릴지도 모를 위태함 속에서 딸애들과 남편은 묵묵히 잘 견뎌주었고 시어머니는 그걸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꾸지람이 없었다. 어쩌면 이번에 아주 한바탕 온 몸으로 꾸지람을 내리신 건지도 모르겠다. 삼 년도 채 안되어 어머니 두 분을 잃은 나는 어쩌면 죄인이다.
시련이 삶을 물들일 때라도 담담하게 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람만이 세상 달고 쓴 것에 일일이 시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삶의 빛깔을 굳이 고르라고 하면 무채색이다 그리고 계절에 비한다면 겨울이고 겨울나무이다. 꼬닥 꼬닥 걸어가는 삶이 화창하고 아름다운 때는 아주 가끔이고 고통스럽고 외롭고 아픈 때는 생각보다 많다. 이런 삶을 견디는 방법이 결국은 마음을 닦는 것이다. 꽃이 시들어 있을 때도 살아있을 뿌리의 마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깊이 뿌리내려야겠다.
해마다 피고 지는 장미를 보며 참 많은 시를 썼다. <십자가>도 장미 향(香) 맡으며, 오랜 시간 시어를 다듬은 시 중에 하나다. ‘분명 하얀 철책 위로 피어오른 장미나무인데, / 십자가를 지고 있는 사내 아니 온몸이 십자가인 사내 / 붉은 꽃을 피워 올린다. 무수히 가시 찔리며 / 때로 이 세상 어디에나 육중한 십자가 같은 / 고통은 있어 / 누군가의 가슴에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 빛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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