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이중섭 거주지에서의 하루

by 오름떠돌이 2014. 1. 25.

문상금시인 / 이중섭 거주지에서의 하루 / 문필봉 / 서귀포신문

 

 

 

이중섭 거주지에서의 하루 

 

 

 

 

<문필봉>시인 문 상 금

20140125() 07:31:22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삽화/정지란

 

오늘은 이중섭 거주지에서 작가의 산책길 해설을 하는 날이다. 장갑을 끼고 두툼한 잠바에 빨간색 목도리를 감았다. 목만 따뜻해도 어지간한 추위는 견딜 수 있다. 이중섭 거리 비스듬히 경사진 거리로 접어들며 걷는다. 예술가와 자유(自由) 그런 보헤미안 같은 여유로움과 평온함 때문일까, 사람들과 강아지들이 유독 많은 이곳에 오면 항상 몽마르뜨 언덕이 떠오르곤 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다녀간다. 물론 드라마라든지 12일 이라든지 그런 매스컴 영향도 크겠지만 이 거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이 이런 결실을 맺고 있을 것이다.

 

거주지 돌담 위로 고개 내민 통통 물이 오른 목련 봉오리 너머 구 상 시인이 쓴 이중섭 거리 이름 기념비와 중섭 누렁이가 반갑게 맞는다. 잎 다 떨군 멀구슬나무는 열매 몇 알 매달고 있고 그 아래 수선 무더기가 수줍게 꽃대를 밀어내고 있다.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들이 정낭을 훌쩍 뛰어 넘고는 마당을 퉁퉁거리며 달리다 마루에도 거침없이 올라가 나무문을 살짝 열어보곤 한다. 이중섭 가족이 피난 와서 거주하였던 이곳은 지금도 올해 구십 오살이 된 김 순복 주인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고 자세히 설명해주며 나무문을 닫는다.

 

신혼부부는 1.4평 방 앞을 살피다 살짝 입을 맞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빨갛게 볼 붉히는 그 모습이 밉지 않아 사진 몇 장 찍어 주었다. 아들 둘을 데리고 이 남덕과 중섭이 서로 체온 나누며 피난생활 속에서도 오히려 그림에 쏟았던 그 가족애와 열정을 본받아 두고 두고 그 사랑이 오래 갔으면 한다.

오후 들며 방문객은 더 많아졌다. 중섭 누렁이는 인파에 도통 관심이 없는지 아예 동그랗게 몸을 말고는 단잠을 잔다. 쌀쌀해서인지 김 순복 할머니는 툇마루에 모습 한 번 보이지 않고 노루 꼬리마냥 짧은 겨울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거리 양쪽으로 하나 둘 공방이며 찻집들,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창작 스튜디오엔 입주 작가들이 전시회를 하고 있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을 디자인해 다양한 상품들을 손수 제작해 파는 숨비 아일랜드를 지나 예그리나 찻집을 지나 갤러리 하하에 들려 탐색이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홍영기 개인전을 감상하며 따뜻한 매실차를 마셨다. 더 많은 갤러리들이 생겼음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바램일까. 그림을 보고 나면 내 영혼의 배가 부르곤 한다.

 

평화롭고 자유롭다. 이중섭 거리에서 그림을 만나고 음악을 만나고 시()를 만나고 무엇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고 기타 연주를 듣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보는 그런 시간들이 아주 즐겁다.

 

이제는 가끔 삶을 잊고 자유롭게 살아가야겠다. 맛있는 밥집도 찾아가 보고 창 넓은 찻집에서 악마처럼 진하고 향기로운 수제커피를 마시며 행복하고 즐거운 얘기만 하리라. 말발굽 안 아끼며 거침없이 달려온 말처럼 나 그렇게 거침없는 자유인으로 시()를 쓰고 살아가리라. ()가 사람과 땅과 바다와 하늘을 비추며 늘 푸르기를 예감하면서.

'겨울나무 야그 > 신 문 기 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시 오월이 왔다 - 시인 문 상 금  (0) 2014.05.24
서귀포 사랑 - 시인 문상금  (0) 2014.03.24
이중섭거리에서   (0) 2013.09.14
나의 힐링(healing)   (0) 2013.07.20
장미꽃이 필 무렵  (0) 2013.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