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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치자 꽃 필 무렵 - 문상금

by 오름떠돌이 2015. 7. 4.

문상금 / 시인 문상금 / 치자 꽃 필 무렵 / 문필봉 / 서귀포신문  / 오름떠돌이

 

 

 

치자 꽃 필 무렵

 

<문필봉> 문 상 금

20150704() 13:14:48 문상금 sgp1996@chol.com 

 

 

쏴아 비가 쏟아진다. 새벽부터 무언가 축축한 것이 오감을 건드리더니 끝내 비로 쏟아진다. 화들짝 놀라 뒷마당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치자 꽃망울들이 하나둘 터져 나오고 있다. , 긴 장마가 시작되는구나. 늘 그랬다. 치자 꽃이 한 겹 한 겹 하얀 꽃잎을 열어 활짝 피어날 때 눅눅한 안개와 함께 세상은 신비한 베일에 싸인 듯 잠겨 있었고 어디선가 솔솔 치자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러기를 한 달 여일이 지나고 꽃들이 뚝뚝 떨어질 무렵 짱한 한여름이 펼쳐지곤 하는 것이었다.

 

 

 

                                                              삽화/ 김 품 창 화백

 

아침 다섯 시 반, 눈을 뜨면 일어나 진돗개 밥을 주고 농장으로 가는 것이 일상화가 되었다. 두 세 시간 수확도 거들고 잡초도 뽑고 나무도 어루만져 주며 하루일과를 계획하고 중요한 일 처리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귀가해 씻고는 다시 미술관으로 일하러 간다. ‘자투리 시간 활용하기, 마음 비우기, 시 열심히 쓰기가 요즘 스스로를 갈고 닦는 중요한 기준이다.

 

딸애들은 스스로 아침밥 챙겨먹고 학교로 등교해 있다. 공부하라는 말 한마디 없는 엄마이지만 스스로 제 갈길 열심히 찾아내고 원하는 진로 찾아가는 딸애들이 눈물 나도록 기특하다. 며칠 전에는 막내딸 중3인 은지가 저녁밥을 맛있게 잘 먹고, 좀 있다 통곡하며 우는 것이었다. 애들 아빠와 당황하여 그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나는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되어 운다는 것이었다. 눈물콧물 쏟으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것을 보며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학원 한군데 안 다니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밤늦게 삼매봉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율동도 잘 하고 애교도 철철 넘치고, 너무 바빠 집안일을 못할 때는 설거지며 청소까지 도맡아 해주는 딸애가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걱정이라니, 아마 중3이라 이제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해서 마음 부담이 되고 좀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힘껏 안아 주었다. ‘은지야, 조금도 걱정하지 말렴. 이 정도면 아주 잘해내는 거란다. 단지 적성에 맞는 어떤 진로를 선택할 것에 대하여 네가 자신감이 없는 모양이구나. 대학생 언니 오빠들도 그런 것을 어려워하는데, 아직 중3이니 시간도 여유 있고 차차 너만의 적성과 진로를 발견하게 될 거란다토닥여주며 밝고 건강하게 이만큼만 유지하며 자라주었으면 참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블루베리 수확이 이제 마무리되어 애들 아빠는 가지치기에 들어갔다. 20년 직장을 퇴직하고 귀농하여 농부가 되어 열심히 해보지만 농사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는 않아 막걸리 마시는 횟수가 많아져 간다. 그나마 오름 오르기와 자전거 타기를 규칙적으로 하여 육체적으로는 많이 건강해진 것이 다행인데, 정신적인 내면의 힘은 조금 약해진 게 아니가 하는 느낌이다. 내가 숱하게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처럼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욕심일까. 살아온 날만큼 더 살아가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이 아찔한 시대에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활짝 웃으며 주어진 생()을 숙명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에는 딱히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나는 해마다 꿈의 목록에 하나씩 추가해 적곤 한다. 그리고 솔직히 나의 시작업의 시작은 여린 성격과 소외의식, 낯선 것에의 적응이 서툴러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오십 평생 고지식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밤을 새워 시를 쓰곤 한다. 매일 마음의 암벽을 오르내리며 피투성이도 되고 한라산 돌에 뿌리내려 번식하는 매화처럼 꽃도 피우고 잎도 틔운다. ‘한라산 암매(巖梅)’도 이렇게 씌어졌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외로운 일/피투성이가 되어/ 암벽을 오르내리는 일/그 아찔한 높이에서/온 몸 열고/꽃을 피우고 잎도 틔우는 일/나는 매일 암벽을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