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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작은 고행(苦行)

by 오름떠돌이 2011. 10. 22.

문상금 - 작은 고행(苦行) - 2011년 10월 22일 - 문필봉 - 서귀포신문

 

 

 

                                           작은 고행(苦行)

 

 

 

                   

 

                                                                                                                                      시인 문 상 금  

                                                                                                   2011년 10월 22일 - 문필봉 - 서귀포신문

 

 

 

 

 

 

 

 

 

 

                                    삽화/정지란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제주시 봉개동 절물 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 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 오름까지 15.4km를 묵묵히 걸었다. 무슨 삶이 그렇게 고단했을까. 지난 칠월에 삼 일간 육지에 갔다 온 이후 참 오랜만이다. 그 때도 땡볕아래 모자도 없이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얼굴은 빨갛게 탔고 발은 온통 물집이 잡혀 엉망이었다. 가끔씩 혼자서 훌쩍 나서게 되는 그 길을 나는 작은 고행(苦行)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나는 참 많은 것들을 얻고 돌아오곤 한다.

 

 

사려니 숲길은 좀처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원시림(原始林)의 푸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삼나무 숲길에서 시작한 그 곳엔 졸참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참꽃나무숲이 있었다. 사람이 깊이와 느낌이 다른 것처럼 숲도 나무도 저마다 다른 깊이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간혹 단풍나무와 옻나무 잎이 빨갛게 수를 놓고 있었다. 그 사이로 미처 이울지 못한 산수국 꽃이 마치 어머니의 그 하얗던 손처럼 손짓할 때마다, 순간 멈칫했다. 임파선 암으로 지난 겨울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대학병원을 통원할 때, 길가에 시퍼렇게 피어있던 그 산수국, 그 빛깔이 하도 강렬하여 내 영혼까지 파랗게 질렸던 산수국, 그래도 나는 그 꽃을 너무 좋아하여 시()도 썼고 그림도 그렸던 것이다.

 

 

한 편 어머니 간병을 계기로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따게 되었고 요양원과 재가 실습을 하면서 그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월요일 오전마다 서귀포의료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아마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그것은 계속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벌써 얼마 안 남은 올 한 해는 나에 대한 끝없는 투자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자격증만 해도 세 개를 취득하였고, 그 중 얼마 전에 '학습코칭 지도자 1급 과정'6개월에 걸쳐 끝냈을 때가 제일 뿌듯하였으며 벌써 겨울방학 그룹 캠프를 기획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제주시를 넘나들며 끝없는 공부와 시험, 자료 수집, 리포터 제출, 강의 시연 및 끝없는 스터디로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지만 가끔 바다도 보고 꽃도 보고 사람도 만났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길 가에 떨어진 도토리 열매를 주워들고 가만히 만져보았다. 약간 거칠고 매끄러운 아직은 그저 풋풋한 체취를 풍기고 있는 그것을 가만히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이제 숲길을 내려가 누군가 우연히 처음 만나게 될 지인(知人)에게 건네줄 것이다. 가을을 선물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마흔 중반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은 그냥 내딛는 평범한 발걸음이 아니라 내가 걸어왔던 과거와 걸어가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미래를 내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지는 꽃에도 마음 아려 밤새 울어대곤 하는 내 영혼에 좀 더 단단한 뿌리가 내리기를 바란다, 이 고운 가을에 !

 

 

 

20111022() 13:17:13 서귀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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