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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열무를 솎으며

by 오름떠돌이 2011. 5. 21.

문상금 - 열무를 솎으며 - 2011년 5월 21일 - 문필봉 - 서귀포신문

 

                                            열무를 솎으며

 

                                               시인 / 문 상 금   20110521() 10:39:36 서귀포신문

 

 

삽화 이왈종

 

동네 텃밭에 무씨를 뿌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 사이 열무가 무성히 자랐다. 참 신기하였다. 문제는 너무 밀집해 자란다는 것이었다. 몇몇이 열무를 솎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어린 열무들은 아예 뽑아 주었고 간격을 주며 단단한 열무들은 남겨 주었다. 그리고 뽑아낸 열무들은 이웃들과 나누어 다듬어 열무김치를 담았다. 한 이틀 멸치젓과 새우젓 냄새가 집 안을 폴폴 넘나들더니, 바라보기만 하여도 배가 불렀다. 맛깔스럽게 담겨진 열무김치가 한 가득 생겨난 것이었다.

  

길가에 만개해 떨어지는 자목련 꽃잎을 보고 한 장씩 그 넓이와 무게를 만져보며 참 징그러운 봄이구나했었는데 어느 새 눈을 뜨면 주변은 무성한 신록으로 우거지고 간혹 담벼락엔 장미 줄기들이 자라나 꽃봉오리를 피워 올리고 있다.

  

지난 사월엔 요양원에 가서 열흘 동안 봉사활동을 하였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새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떤 천하장사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젊은 시절에 자존심 강하고 당당하게 살아오셨던 분들이 정신 줄을 아예 놓아 동네어귀의 백구에게 밥 주러 가야한다며 종일 소리지르시는가하면 골다공증과 전신마비로 보행은 물론 제대로 식사도 못하여 일일이 식사 수발을 들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온 몸에 각질들은 왜 그리 많이 생기시는지 목욕시키고 나면 오일을 몸 전체에 듬뿍 발라드리곤 하였다. 먹고 싸고 주무시고 동물적인 본능만이 남아있는 것 같은 생활 속에서도 간혹 부끄러움은 남아있어 기저귀를 갈 때면 또 부끄럽게 엉덩이를 보여야 하네하고 한 서울 할머니는 힘없이 웃으셨다. 또 봄꽃이 피어나는 창밖을 바라보시며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 참 징그럽네, 죽어지지도 않고, 너무 너무 징그러워!”

  

내가 봄 내내 느꼈던 징그러움을 이 세상 누군가도 느끼고 있었다는 동질감에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한바탕 울고 나니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지만 내 영혼 한 부분은 정말로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설령 몇 분 후에 시간이 멈추어 버리고 이 세상 종말이 다가온다 하여도 정말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살아가야겠다. 세월에 순종하며 순리에 맞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