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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보물 이야기, 신발과 가방 그리고 연꽃

by 오름떠돌이 2011. 8. 13.

문상금 - 보물 이야기, 신발과 가방 그리고 연꽃 - 2011년 8월 13일 - 문필봉 - 서귀포신문

 

 

 

                                        보물 이야기, 신발과 가방 그리고 연꽃

 

 

 

 

                                                                                                                                  [문필봉] 문상금 / 시인

                                                                                                       20110813() 10:55:39 서귀포신문

 

 

 

더운 열기와 땀에 하루에도 몇 번씩 비명을 지루며 살아가는 여름이다. 오랜만에 신발장 문을 활짝 열어 환기시켰다. 문득 나란히 놓여있는 운동화에 눈이 갔다. 그것들은 바로 무척 추웠던 지난해 겨울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서울에서 내려왔던 큰 조카가 선물한 것이다.

 

 

임파선 암으로 6개월 정도 투병생활 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날은 바람 한 점 없었지만 왜 그렇게 날씨가 추웠는지 모른다. 서울에 살고 계시는 큰 오빠 내외와 조카도 내려왔다. 반가웠다. 큰 오빠 내외는 그렇다 치고라도 오랜 세월 서울에서 자란 조카가 그것도 명절과 제사를 물려받아야 할 조카가 제주도의 여러 가지 풍습을 잘 몰라 어색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하관이 끝나고 흙을 다질 때 세 딸애들과 남편은 돌을 고루며 정성을 다해 흙을 밟아주는 것이었다. 신발들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이미 되었고, 딸애들과 남편이 그렇게 참 고마웠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조카에게 말했다.

 

 

지현아, 잘 기억해 두렴, 저런 모습은 아마 네가 죽을 때까지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거란다. 이제 많은 것들이 변해 가겠지. 네가 서울 강남에서 서너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는 모양이지만 그런 모든 것보다도 어쩌면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저런 것들이 더 소중한지도 모른단다. 저 흙 묻은 신발을 오래도록 기억해 두렴.”

 

 

 

 

 

 

 

 

                                    ▲ 삽화 / 정지란

 

 

 

장지에서 돌아와 온 가족이 모여앉아 이런저런 애기들을 나누는데, 갑자기 조카가 안 보이는가 싶더니, 불쑥 서너 개의 종이 가방 꾸러미를 들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시내로 달려가 우리 딸애들과 남편 신발을 잔뜩 사고 와서는 고모 그리고 고모부, 이번 장례식에 제일 많이 고생하셨어요, 참 고맙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여름방학인데도 불구하고 방학이 없는 올해 중 3인 큰 딸애의 가방끈이 끊어졌던 모양이다. 엄마가 바빠서 못 꿰매 주어서 그냥 문제집 몇 개를 달랑 들고 가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자기 딸애가 아이, 짜증나. 가방도 없는데 비가 오네.” 하는 것이었다.

 

 

내 차 안에는 항상 내가 공부하는 책들을 담아두는 가방이 있다. 얼른 내 책들을 쏟고 가방을 내주었다. “엄만 어떡하고, 오늘 학교 가는 날이잖아” “엄마는 괜찮다, 우리 딸이 가방을 들고 가는 게 더 좋아, 엄마한텐 아주 소중한 딸이니까그러고 빗속을 헤치며 운전을 하며 가는데 엄마, 화장지 한 장만해서 화장지 한 장을 건네주며 쳐다보았더니, 딸애의 볼 위로 눈물 줄기가 넘쳐나는 것이었다. 거리에는 빗줄기가 여전했고 내 마음에도 소나기가 한 바탕 내렸다.

 

 

살아가다보면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아니 나는 아직도 눈물이 많은 것 같다. 요새 틈틈이 연꽃을, 아침이슬과 안개에 꽃을 피운다는 수련을 보러 다녔다. 그 무성했던 법화사(法華寺) 구품연지의 연잎들, 시인의 연못 위에 기품 있게 떠 있던 하얀 수련들 그리고 연화지의 붉은 수련과 연꽃들, 그것들은 진흙을 타고 올라 눈부시게 살아있었다. 연잎 위를 구르는 물방울과 헤엄치는 금붕어 사이로 뜨거운 그리움이 가슴을 타고 올랐다.

 

 

발길 닫는 곳곳마다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지고 그리고 내 마음 발길 닫는 곳마다 그는 만났다 헤어진다. 어떤 몸짓인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편안하고 설레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아기처럼 편안해지고 설렌다. 무채색의 그것은 아마 또 하나의 꽃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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