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금 - 푸른 혼 - 문필봉 - 서귀포신문 - 2012년 3월 17일(토) 11:01
푸른 혼
<문필봉> 시인/문상금
2012년 03월 17일 (토) 서귀포신문
▲ 삽화/김품창 화백
봄비가 며칠째 내리고 있는 그 곳엔 하얀 수선화가 돌담 따라 피어 있었고 빛바랜 산수국이 온 몸으로 젖고 있었다. 가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간다. 그 곳엔 정지된 것과 정지되어 있지 않은 것 결국 흔들림을 혹은 움직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서는 외로웠지만 이젠 결코 외롭지 않은 영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그가 오르내렸던 오름과 중산간 들녘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왔다 사라졌다. 다랑쉬 오름과 용눈이 오름 그리고 풀을 뜯는 소의 무리들, 검은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무덤들은 늘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그 고요와 평화 사이로 안개 낀 산, 산자락의 나무들 그리고 줄지어 하얗게 핀 감자꽃들이 흔들렸다. 돌담 너머로 보리물결들이 출렁였고 푸른 잡풀들이 흔들렸다. 붉은 꽃대궁을 지닌 메밀꽃과 억새가 흔들렸다. 너의 영혼이 흔들렸고 나의 영혼이 흔들렸다. 무덤 무리와 오름 그리고 하늘 가득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루게릭 병으로 온 몸이 굳어가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혼을 불어넣었던, 평생 사진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다간 한 예술가의 푸른 혼이 오롯이 살아있었다.
그는 얘기했다. “ 유채, 감자, 당근, 콩, 메밀, 조 , 산디(밭벼), 목초 등 어떤 곡식을 재배하느냐에 따라 이곳의 풍경은 달라졌다고,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흔적만큼이나 중산간 들녘의 모습은 다채로웠다고.” 제주의 들녘은 늘 사람들의 삶의 무대였다. 그는 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제주인의 정체성을,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알아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1985년에 제주도에 정착한 김영갑은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l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제주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았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작업은 고독한 수행이라 할 만큼 열정과 영혼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창고에 쌓여 있는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한 갤러리를 마련하기 위해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여 초석을 다질 무렵, 언제부턴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움직여 2002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투병생활을 한지 6년 만에 손수 만든 그곳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두모악엔 언제부턴가 쓰기 시작한 나만의 방명록이 있다. 그걸 찾아 달래서 또 한 줄 덧붙인다. “지독히도 사랑했던 섬 제주에, 푸른 혼으로 영원히 살아있다고, 수선화 짙은 향(香)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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