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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나, 항시 새로이 시작한다

by 오름떠돌이 2012. 5. 12.

문상금 - , 항시 새로이 시작한다 - 문필봉 - 서귀포신문 - 20120512()

 

 

 

                       나, 항시 새로이 시작한다

 

 

 

 

 

                                                                                                                                <문필봉> 문상금/시인

                                                                                                 서귀포신문   20120512() 12:47:59

 

 

 

 

 

 

 

 

                            ▲ 삽화/김품창 화백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굵직한 장대비가 쏟아지다 보슬보슬 이슬비가 내린다, 그 사이로 한 뼘씩 자라나는 새싹들과 들풀들의 그 비릿한 냄새를 맡는다. 눈부신 생명력을 만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항시 새로이 시작하고 있다신영복 시인의 <처음처럼>이란 시()를 소리 내어 노래처럼 불러본다.

 

 

가끔 들판으로 산보를 나간다. 가장 편한 신발을 골라 신고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만가만히 돋아나는 풀들도 밟아보고 새싹들도 만져본다. 쑥도 한 두 줌 뜯어본다. 딸애들과 쑥전이나 쑥버무리를 해 보아야겠다. 무심코 돋아난 찔레 새순을 만져보다 그 가시에 손과 팔이 긁혀 송송 핏방울이 올라온다. 선명한 피, 내가 이렇게 빨갛게 살아있었다니, 그 비릿함에 순간 어지럽다. 하늘이 휘청하는 이 느낌은 바로 며칠 전 어느 화실에서 마셨던 보이차의 그 맛이다. 그 진하고 붉은 카페인을 여러 잔 마시자 화실 가득 쌓여있는 크레파스 그림들이 마구 흔들렸다. 그림들이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또 날아다녔다.

 

 

또 하늘이 휘청하는 이 느낌은 며칠 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허 은호 시인이다. 비칠비칠 곧 쓰러질 것처럼 약국으로 들어가는 허 시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갑게 웃는 얼굴 너머로 기울어져 가는 한 세계를 보았다. 팔을 놓으면 금방 사그라져버릴 것만 같은, 중증 간경화로 만삭처럼 열린 셔츠 사이로 터질 것 같은 배꼽이 엿보였다. 기다렸다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연신 고맙다며 손을 흔드는 뒤로 또다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빗속에 아직도 토종 동백꽃은 피었다 툭툭 떨어진다. 요즘은 쉴 새 없이 글을 쓰고 남는 시간엔 꽃을 보고 또 그림을 보러 다니곤 한다. 그림 속에 깊이 숨어있는 시(), ()속에 숨어있는 그림을, 나의 또 다른 자아를 찾아 길을 떠나곤 한다.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부심이다. , 항시 새로이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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