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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스크랩] 문상금 - 영원한 애독서 `데미안` - 20090321

by 오름떠돌이 2010. 5. 19.

영원한 애독서 '데미안'

 

 

문상금/시인

 

 

 

 

 

 

 

▲ 삽화/ 이왈종 화백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봄날, 딸애들을 도자기교실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고근산 아래 도로는 순식간에 짙은 안개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을 등(燈)이란 등(燈)은 다 켜고 더듬더듬 기어간다.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이는 세상은 끝없이 이어진 안개의 터널, 낯선 미궁 속으로 한없이 빠져든다. 서둘러 벗어나려고 할수록 그것은 거대한 세계로 변해 나를 단숨에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문득 사춘기 때 심취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오른다. 여리고 섬세했던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공감하며 그 무엇인가에 대한 한없는 동경으로 반복해 읽었던 것이다. <책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내 책장에 누렇게 관록을 자랑하며 꽂혀있는 '데미안'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난 라틴어 학교의 학생이었던 싱클레어는 불량배 프란츠를 따라 거칠고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때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구해내고 그 소년을 자기 발견의 길로 인도한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게 되면서 어두운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미 있는 자기 내면에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이라는 성경의 구절을 새로이 해석함으로써 싱클레어에게 선과 악을 다르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와 금지된 다른 세계, 자신 내부의 선과 악이 대립하며 싱클레어는 구도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구도의 과정은 성숙하지만 절대 진리는 진리탐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뇌를 통한 것이란 걸 깨달은 후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데미안은 자아 또는 경지에 이른 바로 자기 자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이며 시인인 헤르만 헤세 역시 신학교 기숙사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탈주,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시계공장의 공원생활과 서점의 견습 점원을 거치며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로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등의 저서를 남겼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헤세는 오로지 자기실현의 길만을 걸었고 수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 것이다.

 

여기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이며, 곧 헤르만 헤세 자신을 말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싱클레어는 어렸을 때 잠시 함께 했던 데미안을 찾아 헤맨다. 싱클레어의 눈에 비친 데미안은 자신의 유약함을 태워버릴 정도로 강한 사람이다. 바로 열망하는 동경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초월했을 때의 모습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 속에서 꿈틀대며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 무엇인가를 우리는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가끔씩 던져보곤 하는 물음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데미안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을 보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발달하여도 그 누구도 근본에서 피해갈 수 없는, 한 시절의 아픈 방황과 그 끝을 이 책은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젊은층에서 애독하는 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두 개의 영역>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이다.

 

하늘은 늘 푸르렀고, 그 푸른 하늘 속을 마음껏 날 수 있으리라 부풀었던 예민했던 십대에 그나마 데미안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반복해 읽으면서 나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살이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소멸을 향해 치달리는 안개처럼 우리 모두는 완벽해지기 위하여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허점투성이인 채로 넘어지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자갈길에 넘어져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내 철없는 딸애들도 '데미안'을 만날지 모르겠다. 아주 우연히, 길모퉁이 책방에서나 엄마의 서재에서 '데미안'을 만나 가슴에 품고 온 시내를 발이 부르트도록 헤매고 다닐지 모르겠다. 혹은 책가방 깊숙한 곳에 보물처럼 감춰놓고 되풀이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 애들도 때론 절망하고 방황하면서, 단단한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리고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 쏟으면서 세상을 향해 단단히 뿌리내릴 것이다.

출처 : 겨울나무
글쓴이 : 오름떠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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