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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문상금 - 내가 시(詩)를 쓰는 이유는 - 20080712

by 오름떠돌이 2008. 7. 15.

 

내가 시(詩)를 쓰는 이유는

                                               

                                               2008년   7월    12일   시인 문상금

 

 

 

 

 

 

 

 

▲ 삽화/이왈종 화백

 

 

 

눈처럼 내리는 벚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사월(四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유월의 끝으로 치달리고 있음을 안다.

촛불시위 너머로 장마가 시작된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제주에는 특히 이 곳 서귀포에는 아예 며칠 동안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강렬한 장대비는 막 피어나는 수국(水菊)을 흔들더니 끝내는 내가 키우는 콩 줄기의 끝을 아예 뭉개버려

이제 더 이상 지붕 위로 뻗어갈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름도 모른 채 동네 가게에서 얻어온 야콘처럼 생겼던 씨앗은 뿌리를 내리는 순간부터 엄청난 속도로 뻗어나갔다.

마치 옛날 동화 속 이야기처럼 하늘까지 뻗어나가기를, 그 줄기를 타고 올라가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은근히 키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며칠 전에는 한라산 중턱에서 엄청난 안개를 만났다. 미로 같은 그것을 나는 안개의 방(房)이라 이름 지었다.

한 치 앞을 내딛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안개에게서 나는 오히려 친밀감을 느꼈다.

 

눈을 감고 팔을 벌려 내 온 몸의 감각기관을 열어 한 발 한 발 걸어보았다.

우리 몸의 기관 하나가 힘을 잃었을 때 또 다른 감각기관은 새로이 열려 활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나는 안개 속을 당당하게 걸어 나올 수 있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내가 시(詩)를 쓰거나 수필을 쓸 때는 대부분 비가 내린다거나 짙은 안개가 낄 때이다.

그것들이 축축한 내 감성을 건드릴 때면 나는 은은한 치자 향(香)따라 원고지에 하얀 종이 위에

혹은 조그만 수첩이나 온갖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위에 나만의 암호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한다.

 

연필로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그동안 곪아 터지기 직전이던 속내를 한바탕 쏟아내기 시작한다.

처음 그것은 글이라 할 수도 없다. 절망과 때로는 혼란의 넋두리를 잔뜩 풀어내는 것이다.

 

달리 뚜렷한 취미를 가지지도 않은 나에게 그것은 유일무이한 표현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무당이 한바탕 풀어내는 굿판처럼 신명나는 나만의 굿판이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며 제목을 정하고 시(詩)가 되겠다 싶으면 비로소 컴퓨터로 완성을 하곤 한다.

그럴 때는 주로 새벽이 되곤 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특히 요즘처럼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새벽안개가 올라올 때는

더 한층 몰입이 되어 나만의 정신세계의 정화작용이 잘 되는 것이다.

 

시(詩)를 쓰고 나의 혼란과 절망과 갈등의 찌꺼기들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큰 위안이 되곤 한다.

결국 나의 시작업(詩作業)이나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라는 것을 고백한다.

 

늘 거닐던 돌담 아래엔 소리 소문 없이 봉숭아 꽃망울이 고개 들고 있다.

미처 우리가 느끼지 못할 때에도 쉴 새 없이 별들은 반짝거리고 꽃들은 소망 하나 간직한 채 피었다 지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나는 아직도 시(詩)에 대해 잘 모른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내 목숨 다할 때까지 조금씩 시(詩)에 대해 알아가고 느껴가면서 시작품을 끊임없이 잉태하고 출산할 것이다.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 쏟으면서 세상을 향해 단단히 뿌리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