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행복
시 인 문상금
2006. 12. 14 서귀포신문
< 삽화 / 이왈종와백 >
화살처럼 흐르는 세월을 실감하는 연말연시다. 서귀포 중앙로타리엔 대형 트리가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지난 토요일 큰 딸아이 생일 파티를 집에서 하였는데 그 때 즉석 이벤트로 거실 한 쪽에 트리를 장식하였다. 딸애나 그 친구들은 신난 함성을 지르며 별이며 달이며 장식들을 꾸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딸애들은 카드를 열심히 만들어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트리에 걸었다.
모처럼 엄마 몇몇은 서귀포 항구가 시원히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모였다. 밤 아홉시, 식구들 저녁도 챙기고 집안일도 일찍 끝낸 엄마들은 여유롭게 까페에 모여 생맥주도 마시고 수다도 떨기로 미리 약속을 했던 것이다. 옷가게를 하는 사람, 횟집하는 사람, 눈 내리기 전에 서둘러 귤을 따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사람,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만나는데도 늘 반갑고 재미있다. 서귀포 아케이드 상가에 공부방이 생겨 시장 상인들끼리 일주일에 두 번씩 열심히 공부하러 다닌다는 얘기며 아이들 시험 얘기, 늦둥이로 넷째아기를 가진 엄마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 새 맥주잔들이 비어 있다.
각자 만 원씩 내어 맥주값을 계산하니 잔돈이 남았다. 가까이에 있는 노래방에 들어가 딱 오천원어치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신곡들이 넘쳐난다 하여도 오랜 세월 최진희의 노래가 단연 인기다. 목소리가 약한 우리는 고음 처리에 강한 한 엄마에게서 배에 힘주고 굵게 막힘없이 소리내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에게는 한 두 가지씩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단순히 놀고 즐기는 것만이 아닌 모든 평범한 만남에서도 배우고 서로 익히는 것이다.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니 밤하늘은 잔뜩 먹구름을 몰고서 금방 눈이라도 퍼부을 정도로 찌푸리고 있고 어느 새 새벽 한 시, 공기는 저절로 외투 깃을 세우게끔 쌀쌀해졌다. 길모퉁이 분식집에 들어가 따뜻한 오뎅과 국물을 마시니 뱃속 깊이 따뜻해졌다. 분식집에서는 �볶이에 쓸 고추장을 담갔다며 함지에 잔뜩 담겨져 있었다. 막 버무려진 고추장은 추운 날씨 탓인지 윗부분이 까맣게 보여 우리 일행들은 팥앙금으로 잘못 생각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다. 바지에 손을 넣으니 아까 카페에서 만 원씩 받은 돈에서 잔돈이 이천원 남는다. 이번엔 무엇을 할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니 멀리 군밤 장수가 눈에 띤다. 이런 새벽에도 군밤 장수가 있다니, 그 사실도 특이하고 반갑다. 종이 봉지에 군밤을 받아들고 하나씩 껍질을 벗기며 먹는다. 도로 하나를 나란히 점령해 걸어간다. 만 원만 내고도 이렇게 새벽까지 즐겁게 유익하게 보낼 수 있다니 감탄 또 감탄이다. 오랜만에 좋은 벗들과 있으니 참 행복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태 기다리다 잠들었는지 딸애들과 남편은 소파며 거실에 다양하게 잠들어 있다. 천방지축 잠들어 있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리 다섯 식구는 어떤 좋은 인연으로 해서 이렇게 모여 살게 된 것일까. 오래 전에 들었던‘잠든 식구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눈물이 난다’는 한 詩人이 생각났다. 그 분은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던 것일까. 그 분도 인연이란 것에 대하여 생각했던 것일까. 따뜻한 이불 속에 식구들과 누우며 참 행복하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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