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떠돌이, 서홍8경, 서홍10경, 서홍동주민자차위원회, 감귤나무, 감귤나무시원지, 미장온주, 천주교서홍성당, 개먼나무, 서홍동개먼나무, 암내개먼나무, 걸매생태공원, 들렁모루, 삼매봉, 솜반천, 솜반내, 지장샘, 지장샘설화, 천지연, 천지연폭포, 흙담, 흙담소나무, 하논, 하논분화구,
서홍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서홍동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고 있는데, 제가 책임을 맡아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건 아니고 리플렛 형식으로 30-40쪽 분량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10월 20일 경에 완료 되어 서귀포칠십리축제 때 선보이게 되는데, 어느 정도 작업은 완료 된 상태여서 요즘 조금 신경이 덜 쓰이게 되네요... ㅎ
책자의 내용 중에 서홍동에서 선정한 10개 명소를 제 블로그이서 먼저 선 보이고자 올립니다. 참고로 여기에 올린 사진들은 제가 찍은 사진들도 있지만 사진작가에게 의뢰하여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진의 저작권은 서홍동에 있음을 알려드리며 스크랩이나 복사를 금지합니다.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무단으로 스크랩이나 복사를 하여 얻게 되는 불이익은 제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감귤나무
밀감은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다고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일본 야사(野史)인 《히고국사[肥後國史]》에 삼한(三韓)으로부터 귤(橘:Tachibana)을 들여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사세가(高麗史世家)에는 1052년(고려 문종6)에 탐라에서 공물로 바쳐오던 감귤의 양을 100포(包)로 늘린다고 하였다. 그후 조선시대에는 더 많은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세종실록에는 1426년(세종 8) 경상도와 전라도 남해안 지방까지 유자(柚子)·감자(柑子)를 심어 시험 재배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탐라지과수총설(耽羅誌果樹總說)에는 1526년(중종 21)에 제주목사 이수동(李壽童)이 감귤밭을 지키는 방호소(防護所)를 늘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문헌에서 감귤의 재배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나 오늘날 남아 있는 재래종 감귤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지금 주종을 이루고 있는 온주밀감은 1901년 신축년의 난 이후 꾸준히 교세를 확장하여 온 천주교 서홍성당(현 복자회관)에 근무하던 엄타가신부가 식물연구를 해오던 중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도임을 세계식물학계에 보고하여 인정을 받고 1911년 제주자생 왕벚나무 몇 그루를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준 답례로 받은 것이 미장온주 14그루를 기증받아 시험재배하게 된것이 제주 온주밀감의 시초이다.
현재까지도 현 천주교 복자성당 앞 마당에 당시 나무중 2그루가 남아있어 수확하고 있다.
암내 개먼나무
마을 안길을 앞내 다리를 넘어선 길가에 한 그루의 큰 개먼나무가 서 있다. 사철이 푸른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겨울과 봄 두 계절을 팥알만 한 빨간 열매가 팥볼래처럼 덩어리져 있는 운치(韻致)가 일품이다. 냇가에 자연생으로 언제부터 있어 온 것인지 연륜을 알 수 없는데 표지판에는 150년으로 적혀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나무가 서있는 맞은편 위쪽에 이전에 상여(喪輿)집이 있었고, 상여집과 연관시켜서인지 영험(靈驗)이 있는 신목(神木)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5년 마을에서 보호가치가 있다하여 축대를 쌓고 주변을 정리하여 표지판에 ‘마을나무’라 했었다. 그때 제주대학교 농과대의 자문을 얻어 수령(樹齡)을 350년으로 표시한 바 있다. 그 후로 천연기념물 지정을 신청해 왔으나, 뚜렷한 식재연유(植栽緣由)가 없다해서 인정이 되지 않고 있지만, 국내 제일의 개먼나무 노거수(老巨樹)인 것은 분명하다.
걸매생태공원
서귀포시 서홍동 천지연폭포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걸매생태공원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도시의 표본이다. 국내 최대 관광의 보고인 천지연폭포를 보호하고 친환경적인 자연생태를 보존하여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태관광자원으로 가치가 높다.
수생식물관찰원, 습지생태계관찰원, 매화 및 야생초화류관찰원, 야생조류관찰원, 목재산 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어서, 자연을 유흥중심에서 생태자연 중심으로 시민들이 인식하고 시민스스로 올바른 자연환경을 지켜가도록 만든 이 공원에서 숨쉬는 자연을 만나볼 수 있다.
'걸매' 란 '물도랑이 자주막혀 메워져 있는곳'이란 뜻으로, 즉 항상 물이 고여있는 장소로 예전에는 논이었다.
* 전시물 종류
1) 동물상 - 걸매는 솜반천과 급경사지의 수림으로 다양한 종의 어류와 조류의 서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조성된 생태연못은 잠재적인 서식지이다. 조류(바구리,박새 등 30종 190개체), 어류(사리, 잉어,송어, 미꾸라지, 금붕어),양서류(개구리), 곤충 (나비, 딱정벌레 등 9목 41과 81종)
2) 식물상 - 걸매는 솜반천변에 자생하는 170여종의 식물과 습지성 초본류, 야생초화류 등 70여 종이 식재되어
다양한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 습지성초본류 - 부들, 골풀,갈대, 노랑꽃창포 등 ▶ 야생초화류 - 털머위,맥문동, 복수초, 양지꽃 등 ▶ 목본류 - 황매화, 조팝나무, 녹나무, 굴거리 등
들렁모루
'목축지'로 가는 서쪽 길의 '정도' 가까운데 있는 서홍동 2450번지 일대이며, 꼭대기에 '들음돌' 같은 큰 돌이 얹어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루'는 동산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서쪽으로 '여흔계'가 있고 남쪽으로 '눌왓동산'이 있으며 과거에는 대부분 목장이었으나 현재는 과수원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2007년 9월에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2900여만원을 들여 산책로 조성사업을 끝냈다
삼매봉
서귀포시 서쪽에 있는 해발 153.6m의 분석구(噴石口)로, 정상에 봉우리 세 개가 있다고 해서 삼매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삼매봉공원이라고도 한다. 정상에 오르면 남성정이라는 팔각정이 있고, 체력단련시설과 삼매봉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길이 1.2㎞의 산책길이 나 있다. 산책길 주변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등이 울창하다.
남성정에 서면 서귀포를 중심으로 한 남제주 일대와 새섬· 범섬· 문섬· 섶섬 등의 무인도, 서쪽의 마라도와 가파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 바닷가에는 약 1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높이 20m의 기암 외돌개가 있다. 고려말 목호(牧胡)의 난을 토벌할 때 최영이 이 외돌개를 장수로 꾸며 놓자 목호들이 두려워 모두 자결하였다는 일화가 전하며 장군석 또는 망부석이라고도 부른다.
삼매봉은 남제주의 망루이자 서귀포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해안풍경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밤에 손을 뻗으면 남쪽 하늘의 노인성(老人星)에 닿는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솜반내, 솜반천
솜반내는 홍로천(烘爐川), 연외천(淵外川)이라고도 하며 하류에 물을 이용한 논밭이 케가 만들어져 있고, 두개의 큰 다리가 놓여 교통의 편의를 주고 있다. 물이 흐르는데 따라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등의 웅덩이가 형성되어 소가 많아서 솜반내라 이름이 되었을 듯 하다. 생수가 상시 흐르지만 담수어는 없고 게가 서식하고 있을 뿐이다.
서귀포시는 지난 2000년부터 천지연폭포 상류인 서홍동 `솜반천' 주변을 어린이들이 하천 생태계를 체험하는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국비 11억4천만원 등 모두 19억원을 투입, 2002.05.27일 정비사업을 마쳤다.
그린시티 부문 공동대상을 받은 서귀포시는 환경친화적인 도시를 가꾸기 위해 전 도시의 공원화 사업과 함께 380억원을 투자해 시민의 젖줄인 연외천을 복원하 기 위해 솜반천, 걸매ㆍ천지연재해지구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했다. 이 결과 오 염으로 모습을 감췄던 참게, 송사리, 다슬기 등 수중생물이 서식하고 백로, 원 앙 등 조류가 찾아오는 등 시민의 생태학습장으로 변모했다. 특히 솜반천은 20 04년 2월 환경부에서 생태복원우수사례로 지정됐다.
지장샘, 지장샘설화
고려예종때 송나라왕이 고려의 지세와 산세가 특이한 형국을 감지하여 호종단에게 고려의 지혈을 단맥케 하기위하여 제주로 보냈다. 왕의 지시를 받은 호종단은 제주의 서쪽으로 상륙하여 수맥을 끊으며 홍로마을(서홍동)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에 앞서 홍로마을의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백발의 노인이 위급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지금 자신이 쫓기고 있는 상태이므로 감추어 주시고 누가 찾아와 묻거든 모른다고 해달라”는 부탁을 하므로 농부는 그 백발노인을 소길마로 덮어주었다.
곧이어 호종단이 큰 개한마리를 데리고 이곳에 나타나 밭가는 농부에게 “이 근처에 꼬부랑 나무 밑에 헹기물이 있다는데 모르냐?”고 묻자 농부는 수상히 여기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호종단은 부군에서 ‘꼬부랑 나무밑 헹기물’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지고 있던 술서가 틀렸다며 찢어버리고 돌아갔다.
호종단이 돌아간 후 농부가 소길마를 들어보니 숨겼던 백발노인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는 한 그릇의 헹기물이 남아있었다. 이 물을 그 자리에 부었더니 계속해서 맑은 물이 솟아나 지금의 지장샘이 된 것이다. 앞서 말한 백발노인은 지장샘의 수신(水神)이었으며 꼬부랑 나무밑이란 소길마 가지가 꾸부러진 것을 가르킨 것인데 호종단은 이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수맥을 끊지 못하고 돌아간 것이었다.
천지연폭포
그 이름만큼이나 빼어난 서귀포 천지연(天地淵)폭포는 조면질 안산암의 기암절벽이 하늘높이 치솟아 마치 선계(仙界)로 들어온 것같은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
천지연계곡에는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된 담팔수 자생지 이외에도 가시딸기, 송엽란 등 의 희귀식물과 함께 계곡 양쪽에 구실잣밤나무, 산유자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성 식물들 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특히 담팔수나무는 담팔수과의 상록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안덕계곡, 천제연, 효돈천 등 제주도 남쪽해안이 섶섬, 문섬 등이 그 북방한계지이다. 이 천지연난대림지대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1㎞쯤 걸어 들어가면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 어지는 폭포와 만나게 된다.
서귀포항 어귀에서 길게 뻗은 오솔길에는 꽃치자,왕벚나무,철쭉 등의 아름다운 꽃나무와 더 불어 정취어린 돌징검다리, 숲사이 군데군데 마련된 쉼터가 최상의 데이트 코스를 연출해주 므로 신혼부부나 연인들 사이에 무척 인기가 높다. 또한 폭 12m, 높이 22m에서 세차게 떨어져 수심 20m의 호(湖)를 이루는 천지연의 맑고 깊은 물은 천연기념물 제 27호로 지정되었으며, 무태장어(천연기념물 제258호)의 서식지로서도 유명하다. 야간조명시설이 돼있어 11~4월에는 밤 10시까지 5~10월까지는 밤 11시까지 야간관광이나 데 이트를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최적지이다. 매년 서귀포칠십리축제가 이곳을 중심으로 화려하 게 펼쳐지기도 한다.
* 무태장어
서식지 천연기념물 제258호인 무태장어는 회유성 어류로서 하천이나 호수의 비교적 깊은 곳에서 산다. 육식성이며, 깊은 바다에서 산란한다. 몸은 황갈색이고 배는 백색이며, 온몸에는 흑갈 색 반문이 흩어져 있다. 낮에는 소에 숨고 밤에는 얕은 곳으로 나와 먹이를 잡아 먹는데 큰것은 길이가 2미터, 무게 가 20㎏에 이른다. 국가에서는 무태장어가 서식하는 천지연 일대 무태장어 서식지를 천연기 념물 제27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서귀포층의 패류화석
천지연하류 서남쪽 해변에 위치한 화석지대로서 제 3기인 플라이오세에 속하는 해성층이 발 달하여 있는데 이것이 서귀포층이다. 이 지층은 주로 회색 또는 회갈색을 띤 사암류 및 점 토로 구성되어 있고 조기패류와 동물화석들이 섞여 있다.
하논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에 있는 마르형 분화구를 말하며 산굼부리 분화구 또한 하논분화구와 마찬가지로 마르형 분화구이다. 마르는 화구의 둘레가 둥근 꼴의 작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 화산을 일컫는다.
바닥 면적은 21만 6000평, 너비는 1,000~1,500m이고, 높이 10~15m의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5만~7만 6000년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마르형 화산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바닥에는 5만여 년 동안 형성된 깊이 7m의 습지 퇴적층이 있어 시대에 따라 식생과 기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대형 분화구이자 이중화산이며, 바닥에서 하루 1,000~5,000ℓ의 용천수가 나와 500여 년 전부터 벼농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하논은 큰 논을 뜻하는 우리말 '한 논'에서 유래한다. 대부분의 면적이 사유지이며, 논과 감귤 과수원이 들어서 있다. 서귀포시에서는 이 분화구가 동아시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고생물과 고기후의 비밀을 간직한 지형이라 하여 2004년 초부터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흙담소나무
예전에 한질(大路)에 있었던 흙담길을 동으로 굴왓모루에서 서쪽으로 맥수물내 사이의 길가에 큰 소나무가 길게 뻗은 가지로 양팔을 벌려서있는 듯이 한 줄로 곧게 심어져있다. 이 소나무는 구한말(舊韓末)1910년경에 당시의 향장(鄕長) 고경천 진사의 착상에 의해 마을 주민들이 심은 것인데, 마을에 재화(災禍)가 주주 일어나는 까닭이 마을 앞이 너무 트인 탓이라 여기고 그 허실한 데를 막아 보하는 뜻에서 심어진 것이다.
소나무가 심어지기 전에 이곳에 둑을 쌓아 담처럼 된 흙담이 있었다. 마을 지세가 화로모양으로 화기가 세어서 집에 불이 잘 일어나므로 불은 물로 재운다는 풍수의 이치에 따라 둑을 쌓고 물이 고이도록 하여 화기를 누른 것이었다. 흙담을 만들고 화기는 재웠지만 둑이 낮아 위쪽의 모루의 기세에 미치지 못하므로 크게 자라는 소나무를 심어 상합(相合)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운치 있고 온후(溫厚)한 기품(氣品)으로 마을을 수호하고 있는 흙담 큰 소나무, 오랜 풍상에도 강건(强健)히 지켜 서있는 그 은덕과 선인들의 혜안(慧眼)에 마을은 평온히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상사는 야그 > 관 광 야 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 제주감귤축제 - 20081123 (0) | 2008.11.25 |
---|---|
탐라문화제 - 20081003 (0) | 2008.10.13 |
詩가 흐르는 산지천의 금요일 - 20080905 (0) | 2008.09.08 |
식당 - 가시머리가든 - 20080831 (0) | 2008.09.01 |
호프 - 여우와 놀던 닭 - 20080831 (0) | 2008.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