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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산다는 것은, 쓰러져도 끊임없이 일어서는 일일 것이다

by 오름떠돌이 2010. 9. 11.

문상금 - 산다는 것은, 쓰러져도 끊임없이 일어서는 일일 것이다 - 20100911

 

           

                                 산다는 것은, 쓰러져도 끊임없이 일어서는 일일 것이다.

 

 

 

 

                                                                                   [문필봉] 문상금 / 시인

                                                                         20100911(서귀포신문 

 

 

쏴아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무방비인 채로 거리를 걸어가다가 그냥 오랜만에 비를 흠뻑 맞아보기로 한다.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온 비는 제일 먼저 얼굴을 적시더니만 내 피부 뼛속 그리고 영혼 깊숙이 타고 흘러내린다. 물방울 맺힌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물에 젖은 세상(世上)이다.

 

 

거리에 풀꽃들과 가로수들은 더욱 싱싱하게 살아나 하늘 향해 마음껏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다들 파릇파릇 살아나고 있는데 제일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은 간혹 유리창 속에 엿보이는 사람들과 건물 계단에서 잠시 비를 긋고 있는 남녀(男女)의 얼굴들이다.

 

 

비 맞은 탓에 더 초라해진 것을 감추려는 것일까. 그들은 핸드폰을 열고 어디론가 쉴 새 없이 통화를 하거나 하나 같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소나기가 그치자마자 쏜살같이 사라져가는 그들의 등 뒤로 그들이 뿜어낸 말과 연기들만 채 떠나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돌고 있다.

 

 

 

 

삽화 / 이왈종 화백

 

 

 

이 곳 서귀포를 태풍 뎬무에 이어 곤파스까지 별 피해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올해는 마당 골목길에 팥이며 호박을 심었더니 연보라 팥꽃과 노란 호박꽃이 피어나고 제법 줄기가 잘 뻗는 것이 참 대견하다.

 

 

그리고 걱정이 하나 늘었다. 태풍 영향권에 접어든다는 소식이 시시각각으로 전해질 때마다 밤새도록 비바람에 시달릴 팥과 호박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달려가 그 어린잎들을 만져보며 안도하곤 하는 것이었다. 농부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팔월의 바람 불고 몹시 무덥던 날, 보목리 섶섬 작은 포구를 거닐었다. 흡사 말갈기 같은 거칠고 하얀 파도들이 뭍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오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뭍의 해안선을 향해 검은 돌을 향해 순비기꽃을 향해 달려왔다 부서져 하얀 포말이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오르곤 하였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보니, 여름이 다가도록 고달프고 지친 내 영혼에도 조금씩 물기 오르고 반짝반짝 생기가 나는 것이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저기 달려와 순식간에 부서져 소멸하는 파도처럼 다소 허망할지라도 또는 자갈길에 쓰러져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끊임없이 일어서며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거닐다 보니 포구엔 모래알처럼 생각들이 쌓이고 간혹 시()들도 날아와 쌓였다. 천생 나는 시인(詩人)으로 살아갈 운명인 모양이다. 오늘도 갯바위에 앉아 시()를 쓴다. 파도의 하얀 물방울들이 쉴 새 없이 내 몸을 간질이고 어느새 나는 바다의 넉넉함으로 가득 채워져 아주 편안해져 있었다.

 

 

 

 

 

 

 

- 이어도엔

 

                 문상금

 

늘 바닷물이 출렁일 때면

가끔 이어도는 어떤 곳일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참 궁금하였다.

 

이어도엔

순비기꽃 닮은 눈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살까

 

이어도엔

머리를 파묻고 밤새워 울어본 적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까

 

바람에 물이 온통 뒤집혀야

갈 수 있는 이어도엔,

 

항구에 반짝거리는 불빛만큼이나

그리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