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야그/신 문 기 사

[스크랩] 문상금 - 시인(詩人)의 연못 - 20100508

오름떠돌이 2010. 5. 19. 22:23

시인(詩人)의 연못

 

시인 문 상 금

 

 

 

 

 

 

 

바람이 분다. 확 세상이 뒤집히고 나뭇잎들이 꽃잎들이 거리에 분분히 떨어져 흩날린다.

내가 즐겨 산책하는 곳이 있다. 거기엔 동백꽃이 있고 수선화가 있고 특히 뭔가 가슴이 답답할 때면 조용히 내려다보

며 소나무 숲속을 걷고 있노라면 확 시원해지는 시퍼렇고 넉넉한 바다가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엔 누가 붙였는지 아늑한 시인(詩人)의 연못이 있다. 최근 지인(知人)이 찍어 보내온 핸드폰 영상을 보며 “아, 시인의 연못이구나!”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나 말고도 누군가는 그 곳을 서성거리고 좋아하며 사진 찍어 보내고 싶은 그런 곳인 모양이다.

며칠 전에 가 보았을 때는 조그만 연꽃과 수생식물 사이로 금붕어 한 무리가 아주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조용히 연못을 몇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바다처럼 거친 하얀 파도도 없이 아주 잔잔한 연못의 세상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보았다.

 

검은 돌 틈을 지나 한가로운 풀잎들 사이로 또 다른 세상 하나가 보였다. 그림자들이 바삐 움직였고 간혹 물 사이로 한숨들이 새어나와 연못이 그 때마다 술렁였다. 그림자들은 바로 최근 몇 개월간 내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중앙로타리에서 밤마다 포장마차를 여는 하늘의 엄마의 경상도 억양과 손님이 없을 때면 보조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향해 피워대던 담배연기가 폴폴 피어올랐다. 친근한 그림자도 보였다. 서귀포 시내에서 11년째 갈비집을 열고 있음에도 항상 생활이 펼 날이 없다는 동창 친구, 간혹 들어차는 손님에게 친절히 서브하며 겨울이 다가오면 한가한 낮 시간엔 단밤을 구워 팔아볼까 생각중이라는 그 친구.

 

메로식당 할머니의 분주한 모습도 보였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인 딸을 돌보며 외손자를 학교에 보내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가 곧잘 받아쓰기도 100점을 받아오고 책읽기를 좋아한다며 해맑게 웃으시는 그 할머니. 그리고 뒷골목에서 아들과 함께 귀가하는 출출한 술꾼들을 상대로 자장면과 국수를 새벽까지 파시는 자장면 할머니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바람 사이로 햇살 하나가 비추는지 시인(詩人)의 연못이 갑자기 환해졌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금붕어들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연꽃의 넓적한 잎들은 생기가 돌아 그것만으로도 이 연못엔 또 다른 건강함으로 되살아 나는 것이었다.

 

어쩌면 시인(詩人)의 연못에 있던 세상은 또 다른 세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일부일 것이다. 일찍이 우리가 미처 부딪혀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일 뿐이다. 그 사람들은 이 세상 한 부분을 끈질기게 붙잡고 저마다의 일터에서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삶들일 것이다. 연일 이어지는 삶의 무게들을 해맑은 웃음과 건강함으로 견뎌내는 그리고 꿈과 미래를 하루 하루 이루어가는 그 모습들이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워 보인다.

머리 한 쪽을 언제부턴가 기르기 시작했다. 가끔 사람들이 만져보기도 한다. 왜 머리를 자르다 말았는지 궁금해 한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조용히 말한다. “왜 궁금하세요? 이 머리카락은 내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이랍니다. 그리고 차차 내가 이루어나갈 미래구요”

 

“ 그럼 이 꽁지 머리가 안 보이면 꿈과 사랑이 모두 이루어진 거네요!”사람들이 한바탕 웃는다. 그 웃음의 환한 만큼이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참 좋겠다.

출처 : 겨울나무
글쓴이 : 오름떠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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